™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친구에게 (2)

카잔 2010. 2. 24. 07:32

내가 만나는 대부분의 만남은 이런 모양이다.
대화 주제는 아주 진지한 것들이고, (이를 테면 자기 꿈에 대한 이야기, 직장 내 어려움 등) 
나는 그런 만남들 후 집을 돌아오면서 깊은 만족과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느끼게 되지.
그리고 나를 찾아 준 그들에게 깊은, 아주 깊은 고마움을 갖게 되고 말야.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글에서 이 같은 마음이 잘 표현된 바 있어 옮겨 적어볼게.

"밖에서 사람을 만나 술도 마시고 이야기도 하다가
집으로 돌아올 때는
꼭 강가로 난 방축 길을 걸어서 돌아옵니다.
혼자 걸어오면서
'이 못난 나를 사람들이 많이 사랑해 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에 감사하는 마음이 듭니다.
또 '오늘 내가 허튼 소리를 많이 했구나.
오만도 아니고 이건 뭐 망언에 지나지 않는 얘기를 했구나.'
하고 반성도 합니다.

문득 발밑의 풀들을 보게 되지요.
사람들에게 밟혀서 구멍이 나고 흙이 묻어 있건만
그 풀들은 대지에 뿌리내리고
밤낮으로 의연한 모습으로
해와 달을 맞이한단 말이예요.
그 길가의 모든 잡초들이
내 스승이요 벗이 되는 순간이죠.
나 자신은 건전하게 대지 위에 뿌리박고 있지 못하면서
그런 얘기들을 했다는 생각에
참으로 부끄러워집니다."

암. 고맙지. 참 고마워.
와우팀을 만나고 돌아올 때가 특히 그렇지.
사실 기수마다 그들에 대한 감정이 조금씩 다르긴 한데
고마운 감정만큼은 비슷하게 다들 있지.
와우팀을 대하다가도 짜증 비슷한 감정이 날 때도 있어.
이런 감정은 바깥을 향한 것이 아니라, 나를 향한 거지.
대부분 나의 인격이 리더의 그것에 미치지 못할 때니까 말야. 

이런 모든 부정적인 감정과 포기해야 하는 것들을 생각해도
와우팀원들에 대한 나의 가장 큰 감정은 고마움이 될 것 같아. 
그들이 경제적인 비용을 나에게 던져 주어서 그런 것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보다는 각자 어딘가에서 살아가다가 인생의 어느 순간에 인연이 닿아
만나게 된 이후로 더욱 힘껏 살아주고, 성장해 주어 고맙더라. 
나는 한 사람이 열정으로 도전을 감행하고
장애물을 뛰어넘고, 사랑스럽지 않은 자기와 화해해 가며
결국엔 해내는 자기실현의 Full Story 를 보게 되니까 말야.
고마운 일이지. 용기를 내어 준 그에게도, 이런 기회를 준 하나님에게도.
 
지금까지 말한 것은 누군가가 나를 사랑해 주어 고맙다는 것이고,
와우팀을 통해 배우는 것이 있기에 고마움이 드는 점도 있어서 짧게 얘기해 볼게.
와우팀을 하면서 깨달은 건
사람은 분명,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내가 존재하고
타인의과의 상호 인정 속에서 자아가 건강해진다는 거야.
나는 와우팀에 나를 던졌고, 그들도 할 수 있는 전부를 던짐으로
얻은 것이 친밀한 관계, 건강해지고 있는 자존감 등이겠지.

다시 사랑해 준 것에 대한 고마움의 이야기로 돌아갈게.
나의 직업 특성상 나는 과대평가될 수 있는 사람이지.
살아가다가 얻은 교훈, 책에서 배운 것들이 진짜인지 실험하여 얻은 깨달음을
글이나 혹은 강연으로 교훈과 깨달음을 얻으려는 이들에게 나누는 것.
이것이 나의 일이야.  이미 '얻으려는 그들'이기에 배움이 일어나는 것이지,
내가 훌륭하다거나 잘 해서 배움이 일어나는 것은 아닐 게야.
참가자들의 학습 열정이 없는 강연에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겠지. 
그러나 강연 후의 "강연 참 좋았어요"라는 감사 인사는 나만 들어서도 안 되고 말야.
강연이 좋다는 말의 진짜 뜻을 알고 난 후라면 다음과 같이 말을 하면 어떨까? 
"강연도 좀(^^) 좋았는데, 나의 오픈 마인드와 학습 열정 덕분에 많이 배웠어요."

사실, 나는 참가자들의 '고맙다'는 말을 저렇게 환원하여 듣는 것 같아.
내 블로그에 와서 댓글을 다는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심정이야. 고마움이지.
글을 읽어 주었다면 그냥 가도 고맙고, (찾아와 주었으니)
댓글을 달아 소통해 주면 더욱 고맙지. 
그들은 글에서 무언가를 얻어서 고맙다는 말을 간혹 하지만,
이 역시 그들이 홀로 고민하지 않고, 블로그를 찾아다닌 노력했기 때문이고
혹은 그냥 놀러 왔더라도, 긴 글을 한 번 읽은 그들의 활동 덕분이기도 할 테지.
나는 그들의 (생각만 하는 게 아닌) '활동'했다는 점,
마음을 열고 누군가의 글을 '읽었다'는 점이 고맙더라구.

어제는 독서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강연에서 만난 20대 초반의 한 녀석을 만났어. 
몇 번 통화도 하고, 문자도 주고받았던 녀석이기에 무척 반갑더라구.
녀석도 뜻밖의 장소에서 예상치 못한 만남에 놀라고 반가워하고. 
그 때, 나는 호들갑스럽게 반가워하고 흥분된 목소리로 인사해야 했어.
내가 되게 점잖게 행동했나 봐. 독서 모임 멤버들이 모두 있어서 그랬나 봐.
녀석과 헤어지고 나니 와우팀원이 그러더라구.
"선생님, 되게 어른처럼 점잖게 인사하시던데요."
와우팀원은 다른 뜻으로 얘기했겠지만, 나는 듣자마자
방금 만나고 헤어진 그 녀석이 나의 반가움을 고스란히 전해 받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다음에는 좀 더 호들갑스러워야지, 하고 생각했다.
반가웠으니까. ^^ 물론 딱 내가 느낀 반가움만큼의 호들갑스러움. 더도 덜도 아닌.
이건 뭐, 내게 어떤 문제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겠지.
누구나 장소에 따라, 함께하는 사람들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니까.

이렇게 매 순간 온전한 나로 살아가지 못할 때가 많지만,
그래도 곁에 있어 주는 사람들이 있고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세상살이가 외롭지 않아. 고맙지. 암 고맙고 말고. 
이렇게 고마움만 느끼고선 잠자코 있으면 좋을 텐데,
나는 또 그들이 뭔가 내게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줄로 착각하여
한 번씩 허튼 소리를 한다는 게 문제야. 암. 문제고 말고.

강연을 한다는 게 말야. 혹은 누군가에게 내 견해를 내어놓는다는 게 말야,
어떨 땐 꼭 술 마시는 것과 비슷한 것 같더라고.
아주 기분 좋게, 진솔하게 대화를 나누고 헤어질 때면 귀가길이 행복하지.
그러나 숙취로 다음 날까지 머리가 아픈 날도 있을 테고
술기운에 말을 많이 하고 나서, 자신의 푼수를 후회하는 날도 있겠지.
나는 강연을 할 때 그래. 아주 행복한 날도 있고,
숙취한 것처럼 머리가 아픈 것은 아니지만, 마음이 찜찜한 날도 있지.  

어제 독서모임은 운영자님이 잘 준비해 주셔서 
참가자 분들에게 뜻 깊은 순간들이 되었지. 무척이나 고마웠지. 
나는 카페 주인이고, 성실한 와우팀원 한 분이 운영자시거든. 
주인장으로서, 카페를 잘 운영해 주니 얼마나 고맙겠냐. ^^
근데, 나는 내가 맡은 순서를 잘 진행하지 못한 것 같아 조금 그랬다. 
이를 테면, '나의 푼수를 후회하는 날'이라고 할까? 
영화 <500일의 썸머>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는데,
심히 느낀 바가 있어 말할까 말까를 고민하다 말을 꺼내게 됐지.
아! 그리고는 후회했다. 말을 급하게 마무리해 버렸다.
온전히 설명한 것도 아니고, 말을 안 꺼낸 것도 아닌 어중간한 
마치 설익은 밥처럼 소화하기 힘든 말이 되었던 게지. 

이건 내가 민감하고 소심해서 그런 것인지
실제로 함께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이 불편해 했을지 궁금하기도 해.
어쩌면, 나의 견해를 말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두려움이 
내 안에 있는지도 모르지. 친구야, 뭐 잡히는 게 있으면 말해 주라. 

오늘 네게 한 말은
내가 자주 느끼는 감정들이다. 
사람들을 향한 고마움, 그리고 허튼 소리를 하고 난 후의 건강한 자괴감 말야.
자괴감은 부정적인 어감인가? 자신을 괴롭히거나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부끄러워 한다는 뜻인데 수치심이라 말하는 게 더 좋니?
수치심이라 하던, 자괴감이라 하던 뜻은 같다. 부끄러워한다는 것 말야. 
어쩌면 이 부끄러움 때문에 그래도 사람답게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도덕적인 덕목으로 용기, 절제, 온화함 등과 함께
수치심을 꼽았더라. 책에서 주워들은 바에 의하면,
수치심은 성품이기보다 감정에 가까우니 하나의 덕으로 보기엔 힘들대.
잘못에 치우칠 때마다, 불명예스러운 일을 할 때마다 수치심이 억제해 주니
이런 역할 때문에 수치심을 꼽았던 게지.
수치심은 특히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덕목이라네.
청년들은 아직 덕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감정에 치우쳐 잘못을 저지르기 쉬우니 말야.
그러니 수치심이 있는 젊은이는 칭찬할 만하나, 어른을 수치심이 있다고 칭찬하진 않는대.
나이 먹은 사람은 아예 부끄러움 느낄 만한 일을 해서는 안 된다나.
나는 젊은이에게서 이제 어른이 되고 싶네. 아님 그 중간 어딘가에 있겠지.
친구야, 너는 어디 즈음에 있니? 요즘도 음주운전 하고 다니는 건 아니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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