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국제평화 마라톤 10km 출전기

카잔 2010. 10. 4. 00:49


새벽 5, 눈을 떴다. 창 밖으로 비가 오는지부터 살폈다.

오늘은 국제평화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는 날이다.
보슬비 정도라면 달리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몸을 일으켰다.

물론 나는 Full course는 아니고 10km 부문에 신청했다.

 

팀원으로부터, 비가 그쳤다는 소식과 함께 달리기 잘 하라는 응원 문자가 왔다.

고마움을 느끼며 오늘의 아트를 했다. 2시간 동안 집중이 잘 된 날이다.

아트를 끝낸 후 여유있게 대회장에 도착하면 좋을 텐데, 그러질 못했다.

대회 전 하나의 약속이 있는데, 약속한 이가 늦게 도착하여 대회 직전에야 도착했다.


늦어서 지하철
역을 달려 내려가다가 오른발을 살짝 삐긋한 것도 마음에 걸리고,

9시 10분 출발인데, 9시에 도착하여 몸을 제대로 풀지 못한 것도 찜찜했다.

스트레칭 1~2분 한 것이 고작인데 출발 신호가 울렸다.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일체유심조다! 컨디션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다.

 

하지만, 사전 훈련으로 100m를 달린 적도 없고, 오늘 내 몸은 참 찌뿌둥하다.

게다가 준비 운동도 제대로 못한 채로 달려야 한다는 것이 아쉬웠다.  

달리면서 집중한 것은 나의 마음 관리였다. ‘괜찮다. 괜찮다. 이미 지나간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난 대회보다 좋은 조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       잠실 경기장에서 출발한 것보다 초반 레이스에서 속도를 낼 수 있다는 점

(그 때에는 달리는 사람들이 도로의 폭에 비해 너무 많았다.)

-       참가한 사람들이 적어 혹시 내가 선두권에 낄 수도 있다는 점

-       아는 사람 없이 홀로 달린다는 점 (지난 대회에는 와우팀원들이 많았다.)

 

첫째 조건은 분명 장점이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속도대로 달릴 수 있었다.

그러나 두 번째 조건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아니, 나의 예상을 크게 빗나갔다.

(비록 10km일지라도) 선두권은 내 수준과는 차원이 다른 실력을 지닌 분들의 차지였다.

선두권은 그들 몫이고, 나는 그저 나의 속도대로 달릴려고 노력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앞지르면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속도가 떨어지고 있나? 일정한 속도를 유지해야 하는 거 아닐까?’

그럴 때마다 조금씩 속도를 냈다. 사실 나는 무지 헷갈렸다.

그저 내 속도로 달리면 되는지, 다른 사람들의 호흡에 맞춰 속도를 조절해야 하는지.

 

정확히 9 13분에 출발했는데 나의 목표는 10 10분이었다.

지난 대회에 57 02초에 들어왔으니 오늘도 그 정도면 만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km 나타내는 표지를 6분마다 만나자!, 는 의욕적인 목표를 되새기며 달렸다.

처음 1km 6분에 달렸다. 이 정도 페이스면 좋다. 허나 후반에는 속도가 떨어질 텐데

 
나는 체력에 자신 있었고, 초반 욕심이 생기어 2km 무렵부터 속도를 좀 더 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제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 중에 눈에 띄는 이가 있었다.

등쪽에 아메바 무늬가 그려진 흰 색 셔츠를 입은 남자인데, 특이한 행동을 한 건 아니다.

균형 잡힌 건강한 몸매의 소유자인 그를 앞서가며 나는 많은 이들을 앞질러 나아갔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저 즐기고 싶었다.

웃으면서 달릴려고, 한강을 돌아보는 여유를 누리려고 노력했다.

3KM마다 나타내는 물을 건네는 이들이 박수를 쳐 주었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다.

점점 힘들어지기 시작한 게다. 숨이 가빠지고 몸이 무거워져서 속으로 되뇌었다.


힘들 때 힘을 내야 근육이 생긴다.

힘듦은 포기하라는 신호가 아니라,

좀 더 힘을 내라는 신호다. 파이팅이다~!’

나는 나의 연약함(끈기 없음, 쉽게 포기함)과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마음의 힘을 실험하고 있었다.

극심한 피로가 아니라면, 컨디션 문제는 정신력으로 이겨낼 수 있어

하지만 숨은 점점 차올랐다. 나는 이제 러너스 하이를 고대하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참자. 어쩌면 러너스 하이에 이르면서 몸이 가벼워질지도 몰라.

 

반환점을 약 27분 만에 돌았다. '이런 속도라면 54분으로 결승점 통과네.'

5km 이후에는 조금 더 힘들었다. 옆구리가 아파왔다.
그 때,
아메바가 내 앞을 가로질러 나아갔다. 나는 그를 바라볼 뿐 속도를 내진 못했다.

아메바는 조금씩 앞서 나가더니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끝내 그를 다시 보지 못했다.

 

10km 달리기는 장거리 경주였다. 초반에 앞서 나가도 꾸준히 달리지 못하면 의미 없다.

후반부로 갈수록 힘을 내는 아메바는 나보다 고수였다.  

7km를 넘어서면서 힘이 들어 걷고 싶었지만, 속도를 늦추더라도 뜀을 멈추기는 싫었다.

고비를 넘기니 2.5km 남았다. 뛴 거리를 알려 주는 표지판을 지날 때엔 좀 더 힘이 났다.

 

마지막 고비는 9.5km 즈음에 만난 오르막길이었다.

오르막길을 오르고 나니 페이스가 흐트러져 정말 걷다시피 뛰었다.

이 때가 가장 힘들었다. 그래도 뛰었다. 걷기는 싫었다. 내가 힘들면 모두들 힘들 것이다.

봉은사 사거리에서 삼성역 쪽으로 좌회전하니 결승점이 보인다.

 

어딘가에서 힘이 솟았다. 막판 스퍼트를 내어 힘차게 달렸다. 100m 달리기처럼 골인했다.

골인하고 나니, 결승점에는 수많은 카메라가 기다리고 있었음을 알았다.
뒤를 돌아보니,
모두들 손을 들고 활짝 웃으며 골인했다. 그들은 멋진 사진을 건졌으리라.

카메라가 있는 줄 몰라 미친듯이 뛰어 들어온 나는 이상한 표정의 사진 한 장 뿐이었다.

 

결승점에 들어와 의자에 몸을 던졌다. 3~4분 쉬니 에너지가 회복되었다.

간식을 먹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약간 나른할 뿐 컨디션은 좋았다.

집에 도착하여 샤워하고 나니, 문자가 하나 왔다. 대회 기록을 전한 반가운 문자였다.

“2010 국제평화 이희석님 10km 기록은 0:53:07 입니다.”

 

우와! 예상외로 좋은 성적이다.

꾸준히 운동을 하면 40분대로 접어들 수도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자주 달리자. 건강을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고, 내 곁의 사람들을 사랑하는 길이니!

지난 대회보다 4분이나 당기다니! 마음 컨트롤 덕분인가? 어쨌든 기분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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