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책을 많이 읽고 있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네요, 늘 많이 읽지 않으세요? 라고 마음 속으로 묻는 분이 계실지 몰라 설명을 덧붙인다. 여기, "오늘은 날이 밝았다" 라는 문장이 있다. 어떤 느낌인가? 새삼스럽지 않다. 그래서 어색하다. 날은 '오늘'만이 아니라, 매일 밝아오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우리가 매일 어둠 속에 살았다고 한다면? 오늘은 날이 밝았다, 라는 문장이 더 이상 어색하지 않다. 아니, 이 문장만으로는 감정을 담아내기 힘들다. 드디어! 날이 밝았다, 정도가 되어야 하지 않겠나.
나는 늘 책을 많이 읽지 못한다. 바쁘기 때문이다. 할 일이 많기도 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직업이기도 해서다. 근근히 혹은 가까스로 한 달에 두어 권 완독하는 정도다. 그러니, 요즘 책을 좀 많이 읽고 있다, 는 첫 문장은 내 감정을 절제한 것이다. 제대로 쓰면 이렇게 돼야 한다. 드디어(!) 책을 많이 읽고 있다. 야호!
12월 들어, 10권의 책을 손에 잡았다. 200페이지가 안 되는 얇은 책들은 이미 3권을 완독했다. 하루 이틀만 더 지나면 50여 페이지를 남겨 두고 있는 『닥치고 정치』를 완독할 것 같다. 김탁환의 『천년습작』도 해가 바뀌기 전에 마지막 책장을 넘길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사는 속도는 항상 읽는 속도를 능가한다. 사들인 책을 말하라면, 나는 좀 더 신이 날 것이다. 예스24사 주문내역을 살펴 보니, 12월에만 3번에 걸쳐 20만원 넘는 책 구입에 썼다. 그 중 『사유 속의 영화』가 가장 탐난다. 영화 이론을 묶은 선집이다.
12월부터는 독서일지도 새로 시작했다. 독서노트가 나의 리뷰를 적는 노트라면, 독서일지는 그저 내가 어떤 책을 읽었나를 추적하기 위한 책의 목록을 담은 기록이다. 2011년 1월, 노트북 파일을 모두 잃고 난 이후, 11개월 동안 중단되었던 개인사의 독서 파트를 새롭게 시작한 것이다. 내게는 고무적인 일이다.
읽은 책이 있으니 독서일지를 쓰고 싶었고, 무엇보다 언젠가는 새로 시작해야 될 일 하나를 시작한 점이 나를 기쁘게 한다. 2012년에는 이렇듯 몇 가지 일을 더 시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다시 책을 쓰고, 다시 강연 PPT를 만들고, 다시 여행 사진을 폴더에 정리하고...!
나의 상실을 위로한다는 좋은 의도로, 어떤 이는 액땜했다고 치부하란다. '앞으로 닥쳐올 액을 다른 가벼운 곤란으로 미리 겪음으로써 무사히 넘기라'는 뜻일 텐데, 사실 액땜 운운하는 말은 상투적이다. 늘 써서 버릇처럼 된 것을 여전히 쓰는 것이 상투다. 상투적인 것은 힘이 없다. '상투'에는 대상에 대한 진지한 애정도 관찰도 없기 때문이다.
엄살이 아니라, 올해 초의 상실은 '가벼운 곤란'이 아니었다. 그것 자체가 엄청난 액이었고, 그래서 고통스러웠다. 사회적 관계와 머릿 속의 기억 그리고 웹에 올려 둔 기록을 제외한 '나의 모든 것'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느낌의 많은 부분은 실재였다.
이전으로 되돌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달라진 삶에 적응하는 것이었다. 이겨내려는 노력도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뭔가 하려고 하면, 너무나 큰 상실 앞에 내가 지쳐가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어머니와의 사별에 버금가는 힘겨움이었다.
그러다가 '요즘' 책을 많이 읽기 시작했고, '다시' 독서일지를 작성했다. 매우 반갑고, 이런 일을 선사해 준 시간이 고맙다. 문득, 새로운 노트북에 새 폴더를 만들던 때가 떠오른다. 십 수년 간 자료를 모아왔던 옛 폴더가 아니라, 새로운 폴더를 만들고 폴더의 이름을 '복구'라고 붙였을 때, 그 폴더 안에는 아무런 파일도 없음을 바라보며 나는 참 많이 울었다.
지금도 지구 상의 누군가는 상실의 아픔에 힘겨워하고 있으리라. 그들도 안다. 새 삶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한 가지를 더 알고 있다. 어떤 새로움은, 온갖 슬픔과 고통 속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그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시작하기를 기원한다. 독서는 내 삶의 많은 순간 속에서 나에게 힘을 주었다. 원래도 책을 많이 읽지는 못하지만, 11개월 동안 책을 거의 읽지 못했다. 독서의 힘을 잊고 살았던 날들이다. 다시 읽었더니 내가 언제, 어떻게 힘을 얻었는지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다시 시작하려는, 아니 다시 시작해야만 하는 이들에게 독서를 권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힘을 주었던 그 일을 시도해 보라는 말이다. 눈물을 서둘러 닦으라는 것도 아니다. 30분 울어야 할 울음을 20분 만에 그치면, 슬픔이 내면에 쌓인다. 충분히 울고 난 다음 무얼 할지 모르면, 그 때 자신에게 힘을 주었던 일을 다시 시작해 보자는 조심스러운 권유다.
나는 2012년에도 책을 읽을 것이다. 올해보다 조금 더 많이. 조금 더 열심히! 올해를 되돌아본다. 너무 힘들어서 아무 일을 못하기도 했지만, 아무 일도 하지 않아 더욱 힘들어졌는지도 모른다. 내년에는 '다시' 시작하는 일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다시'는 하다가 그친 것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다시! 난 이 말이 참 좋다. 나에게 '다시'는 곧 '생성'이다.
글: 자기경영전문가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 컨설턴트 ceo@youni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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