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짧은소설 긴여운

우정

카잔 2015. 7. 13. 11:05

 

[짧은 소설] 여고생 진이, 경숙, 주희는 단짝이었다. 같은 반은 아니었지만 점심시간을 항상 함께 했다. 화장실도 같이 다녔고, 시험 때면 같이 밤을 새며 공부했다. 주말에도 만나 만화책을 보거나 가끔씩은 사소한 쇼핑도 함께 다녔다. 어느 날, 진이가 윤리 선생님의 말을 전했다. “어제 윤리가 그러더라. 고등학교 친구들이 평생 변함없는 우정으로 남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대부분은 안 그렇다고.” “, 그건 대부분이 그렇다는 거고, 우리는 아니지.” “당연하지. 대학 가도, 결혼을 해도 우리는 변치 않을 거야.” 셋은 우정반지를 맞췄다. 반지를 깜빡한 날에는 두 사람의 핀잔을 들어야 했다.

 

경숙과 주희는 서울의 대학교에 입학했다. 진이는 경기도로 대학을 다녔다. 새로운 문화와 대학 생활에 적응하느라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계절이 바뀔 때마다 셋은 뭉쳐서 남자친구 얘기, 동아리 이야기를 나눴다. 진이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했다. 고등학교 동창들 중 가장 먼저 결혼한 셈인데, 아이를 낳고서는 친구들을 만나기가 힘들어졌다. 친정 엄마에게 아이를 맡기고 오랜만에 셋이 만났다. 진이는 아이 키우는 이야기를 했고 경숙과 주희는 열심히 들었지만, 의리만으로 공감에 이르기는 힘들어 불쑥불쑥 딴 생각도 했다. 진이의 말이 끝나면, 둘은 직장 이야기를 했다. 집으로 가면서 진이는 허전함을 느꼈다. 예전의 공감대는 사라졌다. 셋이 만나는 횟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경숙과 주희는 회사 일로 바빴다. 경숙은 야근을 하는 날이 많았고, 주희는 남자친구와 주말을 보냈다. 진이는 동네 놀이터에서 만난 이웃집 아줌마랑 친해졌고, 경숙은 직속 상사와 신뢰를 주고받았다. 주희는 남자친구의 세계에서 지내는 때가 많았다.

 

윤리 선생은 여전히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마음을 나누는 친구들은 소중합니다. 평생 함께하지 못하더라도 말이죠. 사실 평생을 함께하는 친구는 아주 소수일 겁니다. 수년 또는 수개월뿐일지라도 친구를 진정으로 위하고, 서로에게 살아갈 힘이 되어준다면, 그러한 시절 인연도 평생 인연 못지않게 아름답지요.” 선생은 해마다 다른 학생들을 만나고 헤어지는 자신의 삶을 떠올리며 덧붙였다. “만나면 헤어지는 법이고요.” 신입 교사 때에는 매년 허전했었는데, 경력이 쌓일수록 시절 인연과도 진솔함과 애정을 주고받는 법을 배웠다. 좋은 선생은 학생을 키웠고, 선생은 세월이 키웠다. ()

   

 

[사족]

 

1)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환경의 영향력은 크다. 학창 시절의 우정은 서로 상응하는 공감대로 맺어지기도 했지만, 매일같이 만나게 되는 학교생활이라는 환경의 도움도 컸다. 새로운 환경에 접어들면 학창시절에는 보이지 않았던 우정의 느슨한 고리가 풀어지기 마련이다. 이것은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이지 배신이나 변절이 아니다.

 

2) 도타운 우정은 새로운 환경에서도 이어진다. 우정은 환경으로도 형성되지만, 각자의 마음과 서로의 교감으로도 만들어지니까. 새로운 환경을 맞아서도 우리의 우정이 이어질까? 이것을 고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친구를 배려하고 진솔하게 대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가를 묻는 게 낫다. 세월은 서서히 진실을 드러내는 법이다.

 

3) 학창시절의 절친한 우정이 성인이 되어서도 으뜸친구로 남는다면, 최고의 축복이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함께할 뿐만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서로에게 힘과 도움을 주고받는다는 점에서 그들은 깊은 유대감을 누리게 된다. 고대 그리스의 플루타르코스는 으뜸친구는 한 명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나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4) 평생 친구가 되지 못한 옛 우정은 소중한 추억이 된다. 그것으로도 옛 우정은 아름답다. 가는 길이 달라지고 관심 분야가 다르다면, 우리에게는 새로운 친구가 필요하다. 새 친구를 사귀어야 할 신호는 스스로 알 수 있다. ‘왜 내 친구 중에는 나처럼 공부(여행, 와인, 성장, 영화)를 좋아하는 애들이 없을까라는 질문이 찾아들 때다.

 

5) 으뜸친구는 모든 것을 공감하며 숨김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이지 모든 것을 함께 하는 친구가 아니라는 점에서, 한 평생을 사는 데에는 여러 분야, 여러 유형의 친구가 필요하다. 나를 온전함에 가깝도록 이해해주는 으뜸친구는 한 명이면 충분하고, 나랑 이런저런 공감대를 형성하면서도 마음을 나누는 버금친구는 여럿이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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