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잠 못 드는 밤 친구 생각에

카잔 2015. 8. 14. 04:23

1.

매일 저녁 7시나 8시가 되면, 친구에게서 전화가 온다.

"뭐하냐? 오늘 저녁에 볼 거니까 기다리고 있어라.
내 기분 안 내키면 전화 안 하고, 기분이 좋으면 한다.
너는 그냥 내 기분에 따라 나오거나 안 나오면 되는 거니까
신경 쓰지 말고 마음 편하게 있어라."

녀석 특유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나는 미친듯이 마구 웃는다.

정말 웃겨 죽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저리 말해놓고서는 만나면 내가 좋아 죽겠는지

하루 번 돈을 털어서 맛난 것을 사 주곤 한다.

어제는 조개구이를 사 주더구만. 하하하.

오늘도 전화올까? ^^ 괜히 기다려지네.

 

2005년 6월 17일에 올린 싸이월드 미니홈피 글이다.

저런 명령조로 말했던 것은 허물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사이였기 때문.

친구의 연인이 남긴 댓글도 보였고, 그에 장난으로 답하는 나의 댓글도 있다.

"뭐야뭐야, 나 몰래 매일같이 연락하며 지내는 사이예요? 질투 나~~"

"몰랐나 보네. 우린 매일 만났지. 그것도 밤에만. 하하. ^^"

 

2.

하루를 잘 보내고 집에 와서 샤워하고 나왔는데, 그러면 졸음이 와야 하는데, 정말 그럴 시간인데... 친구 생각에 정신이 말똥해진다. 모처럼 만에 생각이 난 것도 아니다. 매일마다 서너 번은 생각하고 지나가는 게 평범한 일상인데, 오늘 밤의 그리움은 유독 진하다. 짙은 그리움에 취해 정신이 비틀거렸다. 마음을 가눌 수가 없었다. 마음은 친구의 흔적을 찾아 블로그 포스팅을 뒤졌고 급기야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있는 사진까지 뒤적였다. 친구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사진을 차곡차곡 모아둔 폴더는 지난 해 9월 노트북 하드디스크와 함께 사라져 버렸기에 새로 몇 장의 사진을 모으기 시작한 것.

 

그동안 무엇 하나 제대로 복구하지 못한 채로 살아왔다. 오늘 새롭게 사진 폴더에 Inspection 폴더를 만들어 몇 개의 사진을 담았다. 10년 전, 그러니까 20대 후반의 사내들 사진... 그 중 한 사람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지금의 현실이 그저 꿈 같다. 유투브로 김광석 음악을 선택하여 듣고 있는데, 음악은 돌고돌아 조금 전에는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가 흘러나오더니, 지금 나오는 노래는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다. 조용필은 녀석이 가장 좋아했던 가수다. 녀석의 18번곡은 <모나리자>인데, 차마 손수 선택하여 듣지는 못하겠다.

 

올해 봄, 인스펙션 친구들과 부산을 여행했을 때의 일이다. 한 차를 타고 이동하는데 라디오 방송에서 <모나리자>가 흘러나왔다. 전주가 나오자마자 운전하던 친구가 채널을 다른 방송으로 돌렸고, 그에 대해 무슨 말을 덧붙인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그랬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내가 "왜 돌려? 들어보자." 하고 말했는지 아니면 생각만 했는지 잘 모르겠다. 싸이월드 말고는 녀석을 볼 수 있는 곳이 또 없을까? 나는 예전 이메일 주소로 로그인하여 녀석의 메일을 검색했다. 주고 받은 메일은 많지 않았다. 우리는 전화를 자주 했던 사이였으니까.

 

3.

녀석이 보낸 메일 중에는 <너는 이런 친구지... ^^>라는 제목의 메일이 있었다. 내가 질문을 보냈고, 녀석이 답변을 한 내용이다.

 

1) 너에게 나는 어떤 친구니?

이 질문은 너의 성향이나 이런 것 보다는 우리 둘에 있어서 네 존재가 어떠냐는 질문으로 받아들였다.

이상하겠지만 마누라 보다도 더 좋은 그런 친구다. 가장 소중한 친구이기도 하구. 이세상에 정말 딱 한사람만 같이 지낼 수 있다면 아마 너를 택할 것 같네. (물론 이런 질문에는 부모님이랑 형제 등은 제외하구 ^^;)  예전에 영어사전에서 단어를 찾다가 외운 문장이 있어. "You inspire me to a greater effort." 확실한 문장인지 지금 애매하지만 내용은 "당신은 나에게 더 열심히 하라는, 날 고무시키는 그런 사람입니다" 이다. 넌 나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고 더 열심히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친구다.

 

2) 나는 어린 시절(서른살 이전까지)에 어떤 아이였니?

어린시절의 너는 한마디로 큰 잠재력을 가지고 그 잠재력을 키우지는 못했던 아니 키우려하지 않았던 그런 아이였다. 내가 너와 문제집 빨리 끝내기, 연습장 사주기, 도망가며 잠자는거 쫒아다니며 깨우기 등을 한것도 네 잠재력을 끌어내보고자하는 나의 작은 노력이었는데 넌 알겠니? 승부욕도 많았고 대단히 감성적인 아이이기도 했지. 10대때 흔들린 자아를 20대가 되면서 서서히 잡아갈 때는 무척이나 뿌듯하고 기뻤다. 어린시절의 널를 가장 대표하는 한마디는 잠재력이라고 난 말하고 싶다

 

3) 나의 강점은 뭐니? 혹시 학창 시절 때 내가 잘 하는 게 있었니?

아직 계발되지 못하고 있는 나의 잠재력이 있나 해서 말야. ^^

너의 강점은 예의있는 태도, 독서력, 지능(흔히 얘기하는 아이큐), 이해력 등을 꼽을 수 있는데 특히 수능 전 지학 공부할 때 난 그걸 많이 느꼈지. 넌 참 애해력이 좋고 똑똑한 친구다.

아직 계발되지 못한 잠재력이라...글쎄다 잠재력이라고 하기보다는 매사에 조금 더 준비를 철저히 한다면 네가 가진 능력을 배가시킬 것 같은데 가끔 그러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아쉬울 때가 있지. 이 얘기는 다음 질문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마.

 

4) 친구야! 너는 나의 어떤 점이 좋고, 어떤 점은 좀 고쳐야 할 것 같니?

좋은 점은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객관적으로 너의 좋은 점을 찾기에는 이미 늦은것 같다. 네가 너무 좋아서 말야. 그래도 말한다면 너의 진솔함과 감성코드 등이 나와 잘 맞아서 우리둘은 죽이 잘 맞는것 같다. 고쳐야 할 점을 얘기한다면 몇가지 들어볼께. 우선 경제관념을 얘기하마. 내가 막상 결혼해서 내사업을 해보니까 물론 재테크 등도 중요하지만 경제적인 자립 부분이 많이 중요한 부분이더라. 60대에 이르러 이룬 부와 40대에 이룬 부와 삶의 질에서 많은 차이가 날거라 생각된다. 물론 네가 쓸데없는 지출을 많이 한다기 보다는 좀 더 경제적인 부분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해서 씀씀이와 재테크, 결혼 등등 많은 부분에 참고했으면 한다.



그리고 연애문제도 고쳐야할 부분인것 같다. 이부분은 많이 나아졌기에 이제는 별로 얘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한마디 한다면 지금 너에게 좋은 책을 쓰고 좋은 경험을 많이 하는것 못지않게 중요한게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거라 생각된다. 이게 시기가 늦어지면 늦어질 수록 확률이 낮아지는 것 같거든. 올인할 필요는 없지만 지금 네가 가지고 있는 관심사에 조금더 연애비중을 높이고 그리고 좀 더 노력했으면 좋겠다. 완벽한 여자를 찾기보다는 연애가치관을 정해서 그에 따라 중요한것만 정해서 나머지는 노력하고 배려하고 맞춰나갈려는 의지를 키운다면 빠른 시일내에 좋은 소식 있을거라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고쳤으면 할 부분이 노력부족이란 점이다. 너란 사람이 이뤄낸 업적(?)은 남이 보기에는 참으로 대단한것으로 보일테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너라면 너 정도라면 더 노력하고 준비했더라면 더 큰 업적을 지금쯤 이뤄냈을것 같다. 물론 노력 안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알지? 좀더 준비성있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말이지. 오케이?



 

4.

노래와 관련하여 또렷한 기억 몇 장면이 있다. 그 중 하나는 2013년 가을, 녀석이 췌장암 수술을 벋운 후 많이 아플 때였다. 나는 차를 타고 남부순환로를 달리던 중이었다. 라디오에서 김현식의 노래가 나왔다.

 

"내 사랑 그대 내 곁에 있어 줘
이 세상 하나뿐인 오직 그대만이
힘겨운 날에 너 마저 떠나면
비틀거릴 내가 안길 곳은 어디에"

후렴구를 듣는데,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남부순환로의 양쪽 가로수길은 노오란 은행나무 단풍으로 물들어 매우 아름다웠다. 그것이 왜 그렇게 서러웠는지... 녀석이랑 걷고 싶었고, 매해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맞는 느낌을 나누고 싶었다. 인생의 가을에 접어들면 서로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는 존재일지에 대해 나눴던 대화가 떠올라 또 울었다.

 

지금도 은행나무, 김현식, 남부순환로를 접하거나 떠오를 때면, 운전대를 붙잡고 꺼어꺼어 울던 그때가 선명한 영상으로 복원된다. 사실 또렷한 기억으로 되살아나는 장소, 물건, 순간은 내 삶 곳곳에 포진되어 있다. 올림픽대로를 타고 아산병원을 지날 때는 어김없고, 녀석이 좋아했던 것들과 조우할 때마다 영락없다.

 

5.

방 안을 서성이며 잠시 울었다. 유투브에서 '모나리자'를 검색하여 조용필의 노래를 들었다.

 

[노래가 나오자마자 눈앞에 펼쳐지는 풍광 : 흥에 취한 20대 사내들이 노래방 기기 번호를 누른다. '모나리자'가 예약된 것을 화면에서 확인하자마자 모두가 환성을 지른다. 모나리자 전주와 함께 녀석이 등장하고, 모두들 일어나 방방 뛰며 고함을 지른다. 현란한 댄스와 함께 진행되는 녀석의 공연으로 분위기는 하늘을 찌르고, 나는 <황홀한 고백>을 예약한다. 정환이가 노래방 빅쇼의 대미를 장식한다.]

 

우리는 이 단순한 레퍼토리로 20대의 수많은 밤을 배꼽 빠지게 즐겼다. 우리가 다시 노래방에서 <모나리자>를 부를 수 있을까? 언젠가 그 날이 오면, 덤덤할까? 그래도 울컥할까?

 

6.

경상북도 영덕군 달산면 옥계리 120번지.

 

인스펙션들에겐 특별한 주소다. 역사에 남은 혹서기였던 1994년 여름에 우리는 저 주소지로 여행을 떠났다. 옥계계곡이다. 이곳 서울 애일당에서는 325km, 새벽인데도 4시간 50분이나 걸린다. 낮에 운전해서 가면 쉬어가는 시간까지 6시간이 걸릴 것도 같다. 꽤나 먼 거리다. 가을 주왕산을 멀다는 이유로 포기하곤 했는데, 그 주왕산보다 멀다. 올 가을에는 주왕산과 옥계계곡까지 가야겠다. 옥계는 친구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장소 중 두번째로 중요한 곳이니까. (PC통신 시절, 녀석의 유니텔 ID는 '옥계추억'이었다.)

 

보성스파월드, 옥계, 울산 방어진과 진하해수욕장, 비진도, 아산병원, 대구의료원은 언젠가 다시 들러보고 싶은 곳들이다. 그 중 첫번째는 비진도다. 녀석이 세상을 떠나기 3주 전, 가장 그리운 추억으로 꼽은 장면이 비진도 여행이었다. 그때 얼굴에 희미한 웃음이 번졌었다.

 

7.

보고 싶은 드라마도 있다. 친구는 2013년 10월 수술 전후로 3주간 입원을 했다. 그때 녀석은 <응답하라 1994>를 참 즐겁게 보았다. 이미 정규방송 방영 때에 보았는데도, 재방송을 참 재미나게 시청했다. 한번은 병실에서 같이 본 적도 있었다. 1994년은 우리가 고등학생 시절이었던 해로, 우리는 더욱 돈독해기 시작했던 시기다. 일년에 360일을 만났던 시절이었다. 함께 '응사'를 시청했더라면 참 즐거웠을 텐데, 아쉽다. 친구가 떠난 후, 녀석과 함께 <응답하라 1994>를 함께 보지 못한 게 종종 절절한 후회로 다가오곤 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아쉬운 것... 눈물 나고 미치도록 아쉬운 게 어디 한 두 가지인가! 모두 가슴에 묻을 수 밖에.

 

 

사람이 누군가를 위해 슬퍼할 수 있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니까

네가 나의 슬픔이라 기쁘다, 나는

그러니까 너는, 자라서 꼭 누군가의 슬픔이 되렴.

그리고 마음이 아플 땐 반드시 아이처럼 울어라.

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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