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짧은소설 긴여운

젊은 할머니

카잔 2016. 3. 5. 07:05

 

[짧은 소설] 진숙은 골프 연습을 하러 가는 길이었다. 핸드폰 벨이 울렸다. 액정에 "내딸"이라는 글자가 떠올랐다. 이내 미소가 맴돌았다. "엄마, 이번 주 토요일 오전에 예원이 잠깐 봐 줄 수 있어?" 딸은 언제나 '잠깐'이라고 말했지만 언제나 잠깐이 아니었다. "몇 시간이야, 구체적으로 말해." 반가운 투정이었다.

 

회갑을 넘긴 동네 언니들은 자꾸 봐 주기 시작하면 발목 잡힌다며 신중하라고 조언했지만, 진숙은 손녀딸을 잠시 봐 주는 게 싫지 않았다. 할미가 된 것이 신기하기도 했고, 손녀딸을 보고 있으면 다시 젊은 엄마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좋았다. "알았어. 엄마가 2시에는 나가야 하니까 그 전에만 와."

 

연습장에 도착한 진숙은 몇 차례 스윙을 휘두르다가 뒤통수에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한 노신사가 서 있었다. 일흔 살은 되어 보였다. '오지랖 넓은 양반이 원 포인트 레슨이라도 하려나?' 예상은 빗나갔다. "제가 지난 주에도 지켜 봤는데, 마음이 설레더군요. 괜찮으시면 저랑 차 한 잔 하시겠습니까?"

 

점잖은 말투, 정중한 태도였지만 진숙은 깜짝 놀랐다. 자신도 어른이었지만 마치 어른을 대하듯 예의 바르게 거절했다. 진숙은 골프장을 나섰다. 집으로 걷는 동안 다리가 후들거렸다. 딸이 결혼할 때에도 손녀를 돌보면서도 진숙은 나이를 느끼지 못했다. 신사의 용기와 설렘이 진숙에게는 설움이었다. 진숙은 집에 도착해 방에 들어서자마자, 꺼이꺼이 울었다.

 

 

'™ My Story > 짧은소설 긴여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원수  (0) 2016.03.09
감수성  (0) 2016.03.08
선물  (0) 2016.03.01
관리  (0) 2016.02.24
또 한 명의 엄마  (2) 2015.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