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아름다운 명랑인생

나의 전도사님 친구 이야기

카잔 2012. 2. 16. 23:21

1.
D를 만났다. 내가 무척 좋아하는 친구다. 교보문고에서 만나 가까운 카페로 이동하는 길이었다. 나는 그를 만나기 직전에 어떤 아주머니로부터 받아 든 광고 전단지를 D에게 건네 주었다. 녀석이 내게 물었다. "이게 뭐니?" 일단 질문을 이끌어냈으니, 성공적인 장난이었다. 나는 히죽거리며 대답했다. "쓰레기."

"역시, 쓰레기통에서는 쓰레기가 나오는군. 어이구! 이 쓰레기통 같은 놈."
녀석은 나를 짓밟는 유머를 했다. 쓰레기통에서는 쓰레기가 나올 수 밖에 없다는 투로 던진 녀석의 말은 무지 웃겼다. D는 덧붙였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지. 속에 가득 찬 것이 밖으로 나오게 마련이라고." 나는 정말, 웃겨 죽는 줄 알았다.

2.
D는 전도사님이다. 그도 교회에서는 점잖은 전도사님이겠지. 나도 와우스토리연구소에는 폼 잡는 선생이다. 하지만 우리도 친구지간으로 만나면 유치하고 짖궂은 장난을 좋아하는 어린아이가 된다. D가 이 말을 들으면 바로 대꾸할테지. "이 자식이 돌았나? 너 혼자 유치한거지. 나까지 끌어들이고 난리네." 그러면 나는 또 한바탕 배를 잡으며 웃을 것이다.

3.
카페에서는 자뭇 진지한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평소에 궁금했던 이것저것에 대해 물었다. 사본학, 칼 바르트의 신학, 『야곱』이라는 책의 탁월함 등 우리의 대화 주제는 꽤 깊었다. (대화 내용은 얕았다.) D는 이제 막 3년차에 접어든 결혼 생활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 주었다. 간단히 끝났지만, 기억에 남는 이야기였다.

배우자와 함께 살아가는 것의 힘겨움 혹은 한 사람이 얼마나 복합적인 면모를 지녔는지에 대한 말이었다.
"결혼 첫해에 아내를 조금 안다고 생각했는데, 둘째 해가 되니까 새로운 면이 또 나타나더라고. 올해는 또 다른 면이 나타났지. 정말 놀라워." 여기까지는 해도 나는 이 말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이어지는 말을 듣고서야 '함께 행복하게 살기'의 어려움이 진하게 전해졌다. "결혼 전의 모습은 정말 빙산의 일각에 불과해. 빙산의 일각."

나는 플래너를 꺼내 '빙산의 일각'이라는 다섯 글자를 적으며 생각했다. '일각'의 경험만으로 배우자를 선택해야 하는 일은 다행인 걸까? (그렇지 않으면 결혼을 못할 테니까) 불행한 걸까? (결혼한 후에 빙산을 발견하며 당황할 테니까) '빙산'까지 안다고 생각하며 결혼할 수많은 커플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들은 사랑의 힘으로 선견지명을 발휘한 것일까? 아니면 사랑에 눈이 멀어버렸기에 결혼에 성공한 것일까?


4.
D는 주섬주섬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곰돌이 푸우 인형이었다. 가방에 왠 푸우? 정말 예측못할 전도사님이다. 요즘 인형뽑기가 취미란다. 동전을 놓고 갈고리 모양의 걸개를 전후좌우로 조정하여 인형을 건져 올리는 기계 말이다. "내 카톡 사진 못 봤어?" D가 묻길래, 얼른 카톡에 등록된 그의 사진을 보았다. 사진을 보고 웃었다. 인형이 소파를 점령하고 있는 사진이었다. 모두 자기가 뽑은 인형이란다. D가 사진 밑에 적어 둔 글귀를 보고 또 한 번 웃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소파에 충만!"


5.
D와 나는 매우 유쾌하면서도 진지한 배움의 시간을 보냈다. 마음이 통하는 친구와의 만남은 인생의 활력소다. 우정이 중요한 까닭이다. 우정을 만드는데 충분한 시간을 들여야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 그러지 못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알고 있다. 빡빡한 일정 속에서는 깊은 우정을 쌓거나 속깊은 대화를 나누기가 거의 불가능함을. 존 오트버그는 이런 말을 했다.

"지혜로운 사람은 우정, 부모 자식 간의 사랑, 부부애 등을 전자레인지에 음식 데우듯 즉석에서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6.
물론 30분의 시간으로도 충분히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만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이 곧 우정이나 사랑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정과 사랑 모두 속깊은 대화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이 즈음에서 D에게 아쉬운 점이 생긴다. 우리는 고작 2시간을 보냈을 뿐이다. 생각해 보니, 지난 만남도 
2시간만을 함께 했었다. 그가 나를 싫어하는 것이라고 오해하지는 마시길. 우리는 친.한. 친구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D도 나처럼 인생의 여유를 만끽하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라고.'

할 일은 많고 세상 돌아가는 속도는 엄청 빠르다 보니 풍류를 즐기는 법을 잊어버리기 십상이다. 그는 공부도 해야 하고(아직 신학생이다), 사역도 해야 하고(전도사님이니), 아내와의 시간도 가져야 한다(그녀는 함께 있는 시간을 중요하게 여긴다). 나도 해야 할 일은 늘 넘쳐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정을 쌓는 일에 시간을 듬뿍 주기란 쉽지 않다. 좋은 삶, 균형 있는 삶을 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노력할 때마다 삶이 조금씩 나아진다는 사실이 참 좋다.

7.
봄에 만날 때에는 3시간 동안 이야기나누자고 말했다. 알겠단다. 나는 또 쓰레기 같은 걸 준비할지도 모르겠다. 녀석을 골탕먹일 일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설렌다. 매번 기막힌 반격을 주는 녀석은 설교 준비는 안 하고, 개그콘서트를 보면서 농담 연습을 하는 것은 아닐까? 참 좋은, 재밌는, 고마운 친구다. 그에게 <목회와 신학> 정기구독을 신청해 주었다. 마음은 3년짜리이지만, 1년치 밖에 하지 못했다. 그래도 기분이 좋다.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기경영전문가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 ceo@youni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