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을 이야기하는 남자>가 되다
아이폰 APP, <책을 이야기하는 남자>를 제작했다. 덕분에, 매주 화요일마다 한 권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했다. 블로그에 포스팅하거나 카페에 게시한 글이 아니기에 '누군가'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 채로 그저 글을 썼다. 한국리더십센터 웹진을 연재할 때와는 달리 독자들의 반응이 내게 전해진 적이 거의 없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글을 쓰는 것이 즐겁고 반가웠다. 내가 글쓰기를 꽤나 좋아한다는 사실을 느꼈다.
아쉬운 점도 있었다. 우리가 APP을 유료로 론칭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실수가 없는 무위(無爲)보다는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불완전한 실행이 낫다. <책을 이야기하는 남자>는 매일의 힘을 보여주기도 했다. 매주 썼더니, 일년이 지난 내게 52편의 글이 주어졌다. 이 글로 출간계약을 하기도 했다. 결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런 일련의 일들을 생각하면, 내년에도 실패를 두려워 말고 크고 작은 일들을 저지르며 살자고 다짐하게 된다.
2. 1일 1식으로 소식에 입문하다
엄마들은 대개 식사 시간 직전에 과자를 먹으려는 아이를 만류한다. 하지만 식욕 앞에서 자제심을 잃는 것은 엄마들도 마찬가지다. 리노투어 여행을 하면서 성인들도 아이들처럼 식욕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점에서는 아이들과 다름없음을 체험했다. 식사를 하러 가는 중이었는데도, 군것질거리 앞을 지나가던 성인들은 멈춰서서 음식을 사서 먹었다. 1~2분 후면 식당에 도착할 텐데 말이다. 결국 그들은 맛난 지역 특산물을 100% 음미하지는 못했다.
만족을 지연할 줄 모르는 그 모습이 오랫동안 내게 화두로 남았다. 그 즈음 읽었던 세 권의 책을 통해 건강한 식생활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했다. 『넛지』를 읽으면서 사람들의 어리석은 선택에 대해 생각했고, 『안나 카레니나』를 읽으며 톨스토이가 생각하는 좋은 식생활을 배우기도 했다. 그리고 『1일 1식』을 통해 현대인들이 지나치게 많이 먹는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그리고 나는 10월 1일부터 1일 1식을 실천하기 시작하여 100일 동안 15일을 제외하고는 1일 1식에 성공했다.
완전히 두 끼를 거르는 것은 아니다. 하루 한 끼는 제대로 된 식사를 했고 나머지 두 끼는 과일, 고구마, 샐러드, 씨리얼 등의 건강 간식으로 가볍게 먹었다. 사실 1일 3식이나 마찬가지이지만, 2끼를 가볍게 먹는 실천 만으로도 여러 결실이 있었다. 소화가 안 되어 더부룩한 날이 없었고, 저녁을 가볍게 먹어서인지 거의 매일 숙면을 취했다. 그리고 뱃살도 빠졌다. 얼굴살이 빠져 볼품이 없어진 것은 아쉬운 일이다.
3. 해외여행을 한번도 가지 않다
일년 동안 한번도 해외여행을 떠나지 않은 것은 7년만에 처음이었다. 군을 제대했던 2005년 이후로는 매해 3~4군데씩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은 내 삶의 중요한 영역인데도 올해의 여행 실적(?)이 부진했던 까닭은 유니크컨설팅 대표로서의 과도한 책임감 때문이다. 실제로 여행을 떠나지 못할 만큼 바빴던 것은 아니었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여행의 상실은 과도한 책임감이 내 삶에 실제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체험한 사건이었다.
4. 자유와 공헌 사이에서 헤매다
2012년은 변화경영연구소의 오프라인 카페가 오픈한 해다. 카페 오픈에 깊이 관여했던 것이 하반기 내 삶의 가장 큰 변수였다. 운영진으로서 우리는 자주 만나 회의를 했고, 오픈일이 다가올수록 각자 많은 일들을 했다. 그 중의 나는 비교적 할 일이 적은 편이었는데도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나의 주요업무는 매주 열리는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준비하고 진행하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이 일을 제안받고서 세 차례에 걸쳐 거절했었다. 하지만 인생 선배의 세번을 넘어선 청을 거절할 수는 없어 합류했지만, 지금 난 생각한다. 세번이 아니라, 다섯 번을 거절하더라도, 스스로 원하지 않는 일은 떠맡지 않아야 한다고. 내가 다시 그 상황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거절을 못할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순응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있기 마련이니까. 나에게는 이번 일이 그랬다. 변화경영연구소는 내가 좋아하는 곳이고, 그곳에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내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거절했어야 했다. 힘들더라도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공헌 사이에서 균형 지대를 찾는 노력은 계속되어야 하니까.
2가지의 이유-투자한 시간과 에너지에 대한 보상이 전혀 없었다는 점과 교통사고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입은 점-으로 인해 안타까운 마음이 있기도 하다. 교통사고는 분명 내 실수이지만, 어느 정도는 카페 업무가 원인 제공을 하기도 했다. 금전적 손실과 보상의 부재 모두 누군가를 탓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묘하게 흘러버린 정황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5. 대학생들과 함께 와우수업을 진행하다
고려대학교 <커리어리더십 캠프>에서 만난 학생들과 유니와우 수업을 진행했다. <살롱9>가 어쩌다가 하게 된 공헌이라면, 유니와우 수업은 내가 자발적으로 벌인 공헌이었다. 한달에 한번씩 수업 진행을 위해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부담스러우면서도, 수업을 마친 후에는 항상 보람을 느꼈고 의미도 있었다. 학생들이 나의 수고를 한껏 고마워해 준 것이 보람을 더해 주었고, 수업을 통해 그들이 점점 더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의미 있었다.
6. 새로운 세계로의 도전을 감행하다
하반기에는 the WOW 홈페이지를 만들고, 내가 진행해 왔던 강연과 교육 프로그램들을 소개할 내용을 정리하고, 와우스토리연구소의 앞날을 생각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런 일들은 10년 전에 와우가 탄생하여 지금에 이르기까지 내가 해 오던 일이 아니다. 개인학당이라 부를 만한 이곳에서 사업이라 부를 만한 일을 시작한 것이다.
내게는 새로운 세계로의 도전이다. 와우스토리연구소는 자기다움을 연구하는 학습 커뮤니티다. 더없이 나다운 공동체였기에 나는 와우리더로서 살 때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하지만 지금 내가 벌이고 있는 일들은 무언가 어색하다. 장인 혹은 예술가의 영혼을 지닌 내가 에이전트 혹은 비즈니스맨의 세계에 뛰어든 느낌이다.
홈페이지에 실을 텍스트 하나를 작성할 때에도 마음의 소리를 따라 소박하게 표현하고 싶은 마음과 팔리는 상품이 되도록 잘 포장해야 한다는 의무감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때로는 내가 잘 하고 있나, 하는 회의감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아직 나는 젊다. 지금까지 발견된 모습이 나의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나의 다양한 모습을 발견하기 위해 종종 새로운 세계로 도전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 도전이 나의 재능과 적성에 맞는 것인지, 아닌지를 묻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는 늘 그 물음을 놓치지 않고 살아왔다. 그러니 이번에는 내가 배제해 두었던 세계를 거닐어 보는 것도 나의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다. 새로운 세계를 거닐되, 그 걸음은 나답게 내딛을 것이다. 남이 되려는 게 아니라, 나의 재능으로 다른 영역에 도전한 것이다.
7. 시간의 유한함을 절절히 느끼다 나는 매년 연말이면, 한해 동안 살아남은 것에 대한 감사함을 느낀다. 건강함과 무사함에 대한 감사가 아니라, 저 세상으로 가지 않고 생존함에 대한 감사다. 일찍 소중한 분들을 여읜 까닭에 생긴 삶의 습관 같은 것이다. 내 영혼에 생긴 생채기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은 필멸하는 존재라른 삶의 진실에 대한 자각이다. 나의 인생이 내게 가르쳐 준 교훈.
올해는 시간의 유한함을 한층 절절히 느꼈다. 우리 선생님께서 작은 수술을 받으셨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완쾌되셨고 건강히 지내시지만, 언젠가는 선생님과도 영원한 이별을 할 때가 오겠구나, 하는 인생의 진실을 직면한 사건이었다. 이런 인식이 일상의 변화로 찾아온 것은 아니지만, 내면의 물결을 일으켰다. 10대 뉴스에 포함될 정도로는. 8. 영원한 것이 없음을 체험하다 나는 올해 9궐에 두피탈모센터 웰킨을 내 발로 찾았다. 부쩍 숱이 적어졌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과연 느낌은 적중했다. 이미 M자형 탈모가 제법 진전되었다는 진단(?)을 받았다. 일부의 부분은 탈모 말기였다. '말기'가 무슨 의미인지는 쓰지 않으련다. 아직 내 마음은 인생에 벌어진 엄연한 '사실'을 믿고 싶어하지 않는 마음이 있다.
9월에는 어깨통증을 잘 치료하기로 유명한 한의원도 찾아갔다. 엑스레이 장비도 겸비하여 양의와 한의를 함께 보는 오십견 전문 한의원이었다. 목이 뻐근하고 어깨가 결릴 때가 잦았기에 침이라도 맞아볼까 해서였다. "과로 때문이예요. PC 사용을 좀 자제하시고..."등의 뻔한답변을 들을 줄 알았는데, '회전근개 손상'이라는 뜻밖의 진단을 받았다. 윈인을 물었더니 의사 분의 대답은 간단했다. 많이 써서 그렇다는 게다. 나는 이 말에 무척이나 놀랐다. 많이 쓰면 강화되는 게 아니라 소모되는 것이다. 그랬다. 영원한 것이 없다고는 하지만, 그 말은 진실이라고 믿었지만, 그 대상에 나의 모발과 근육이 포함되어 있지는 않았다. 나는 왜, 남들보다 인생의 진실을 일찍 맛보는지 불평할 겨를도 없었다. 그후 매주 한의원과 두피탈모센터를 번갈아가며 다녀야 했으니까.
9. 역동적인 와우스토리연구소
2012년 하반기의 와우스토리연구소는 기념할 만한 시즌을 보냈다. 나는 에너지와 시간을 와우에 집중했다. 항상 높은 우선순위의 일이었던 블로그 포스팅도 밀려날 정도였다. 산으로 강으로 여행을 떠나는 리노투어, 격주 월요일 아침 7시에 만나는 더블엠, 1인기업가인 와우들과 함께 하루를 보내는 와우공방 등 여러 프로그램을 추진했다.
하루에 올라오는 와우카페의 게시글이 너무 많아서 글을 다 읽을 수 없다는 즐거운 한탄소리가 들려왔다. 나 역시 리더일지를 매일같이 올렸다. 그결과, 와우카페에 역동적인 분위기가 넘쳐났고, 2013년에도 이런 분위기를 꾸준히 이어가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연말을 맞이했다. 와우탄생 10주년에 걸맞은 모습이 된 것 같아 기쁘다.
10. 완벽주의로 인해 지연된 기쁨
올해 봄, 나는 『행복한 거북이』(가제)의 원고를 탈고했다. 하지만 출판사에 넘기지는 못했다. 연말이 된 지금까지 나의 노트북에 잠들어 있다. (또 날려버릴까봐 외장하드와 웹하드에도 올려두었다.) 형편없는 원고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시간을 두고 묵히며 글을 고쳐쓰면 더 좋아질 것이라는 완벽주의에 사로잡혀 있기는 하다.
사실 탈고한 것은 큰 기쁨이었다. 2011년 1월에 노트북 데이터를 몽땅 날려 버린지 15개월 만에 작가적 생산성을 회복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완벽주의를 벗어나지 못했다. 심지어 여러 지인들이 원고에 대해 호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최종 출판사를 선택하지 않는 나를 보며, 스스로도 고질병이라고 생각했다.
계약을 하고서도 책을 출간하지 못한 2012년은 두고두고 아쉬움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책 언제 나오냐고. 그럴 때마다 2~3개월 후를 계산하여 대답했다. 질문을 받은 그 달에 보내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말이다. 나는 매번 내 다짐을 실천하지 못했다. 이것이 무척이나 부끄럽다.
내가 무슨 대작을 쓰는 작가도 아니고 수년 간의 연구를 발표하는 학자도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 이상 미룰 수도 없다. 정작 원고를 고쳐쓰거나 만지는 것은 아니고 그저 시간만 보내고 있으니 말이다. 일년 뒤 2013년의 10대 뉴스에, 미출간의 아쉬움이 아니라 출간의 기쁨이 첫째 뉴스로 등장하도록 하려면 나는 '완벽주의'와 화해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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