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아름다운 명랑인생

커피 한 잔의 자유

카잔 2013. 11. 18. 15:06

 

1.

구본형은 <떠남과 만남> 개정판 서문에 자유의 본질 하나에 대하여 썼다.

 

"나는 비로소 낮술을 마실 수 있는 건달로 입문하게 되었다. ‘낮술’과 ‘건달’은 불량하지만 내게는 자유의 언어들이었다. 종종 퇴사한 친구나 지인들이 날 찾아와 앞으로 어떤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지 초조하게 물어 오면 늘 그들에게 낮술을 즐기라고 말했다. 빈둥거리는 건달의 일상을 즐길 수 있는 시기는 지금 밖에 없으니 이 좋은 시기를 절대 쉽게 놓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대부분 그들은 2 주일을 버티지 못한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화살을 피하지 못하고 다시 얼른 월급쟁이의 초조로 복귀하곤 한다. 서둘러 작은 가게를 하나 열고 작은 사업을 하나 벌이더라도 월급쟁이의 마음으로 시작한다."

 

2.

자유의 본질이 어디에 있냐고?

빈둥거리는 일상을 누리는 것 자체에 자유의 본질이 담겼다.

자유는 불확실성을 온 몸으로 맞닥뜨리는 이들의 것이니까.

 

누가 자유를 누리는가?

내가 자유에 대하여 처음 배운 텍스트는 성서였다.

성서 속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의 노예로 살았지만,

위대한 지도자 모세가 나타나 그들을 이집트로부터 탈출시켰다.

이른바 출애굽 사건.

 

이제 그들에게는 자유가 주어졌다. 

그들을 짓누르던 압박이 사라졌기에

그들은 어디로든 갈 수 있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고 싶다고 울부짖었다.

압박은 사라졌지만 인생의 불확실성 앞에 섰기 때문이었다.

 

불확실성을 마다하면 자유도 없다.

모처럼만의 시간적 자유가 주어져도

미래가 불안해서,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죄책감 때문에 쉬지 못해서

그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자유는 시간의 있고 없음과는 별개의 문제다. 

 

자유는...

불확실성을 온 몸으로 맞이하는 용기이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인식하는 자기이해고

그것대로 실천해 나가는 자기조절력이다.

 

어떤 이에게는 구속이던 시간이

어떤 이에게는 자유가 되는 비밀이 여기에 있다.

 

3.

낮술은 자유다.

술에 거하게 취해 시간을 즐길 수 있다면 분명 자유다.

이때의 자유는 '낮'이나 '술'에 있는 게 아니라

그걸 즐기는 그이의 '영혼'에 깃들어 있다.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의 여유도 자유다.

낮술보다 자주 창조해낼 수 있다는 점에서 

나는 이 커피 한 잔의 자유가 좋다. 

(혼자서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선 커피가 낫다.)

 

나는 지금 카페에 있다. 삶이 내게 준 선물 같은 시간이다.

오늘의 자유는 뜻 밖의 자유이니까. (일정 하나가 취소됐다),

11월 중순인데도 첫눈이 내렸다. 그 장면을 큰 유리창을 통해 보았다.

발빠른 카페 직원이 낭만적 선율의 캐롤을 들려주어 분위기를 돋구었다.

 

날씨에 맞춰 음악을 틀 줄 아는 그의 센스가 고맙다.

내 인생에도 굳은 날씨, 맑은 날씨가 오고 간다.

저네들의 센스를 닮아 나도 날씨가 어떠하더라도 자유롭고 싶다.

 

아메리카노가 바닥 났다. 그래도 자유는 남았다.

자유는 외부의 조건이 아니라,

내면의 어떤 힘에서 생성되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