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소설] 메르스 감염자가 25명으로 늘었다. SNS를 통해 확인되지 않은 예방 대책이 나돌았다. “코에 바세린을 바르면 괜찮아.” “사람들 많은 곳에 가지 마. 마스크 꼭 쓰고.” “손을 열심히 씻어야 합니다.” 세화는 은근히 걱정이 되어 남자 친구 영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자기야, 메르스가 호흡기 질환이라 바이러스가 코 속으로 들어와 감염될 수 있는데 바세린을 발라놓으면 이 녀석이 메르스 바이러스를 몸 속으로 안들어가게 딱 잡아 준대. 지용성이라. ^^ 나는 바르고 나왔어.” 곧장 답변이 왔다. “우리나라 감염자가 지금까지 20명(?)이라는데, 5천만이 넘는 우리나라 인구에 비하면 극히 소수야. 차라리 나는 오늘 밤 움직일 때 교통사고를 걱정할래.” 영수의 머릿속에는 어제 강변북로를 달리다가 확인한 교통사고 부상자 수가 떠올랐다. 부상자는 항상 세 자리 숫자였고 사망자는 간혹 한 두명일 때도 있지만 0명일 때가 더 많았다. 여자 친구에게는 걱정하지 말라는 투로 당당하게 말했지만, 영수는 자정이 가까운 시각에 ‘메르스’를 다룬 특집 시사프로그램을 꼼꼼히 시청했다. 기억할 대목을 메모하다가 잠들었다.
“메르스 대전!” 이튿날 아침, 포털사이트의 검색어 1순위 단어였다. 전면적인 전쟁(大戰)인지, 광역시 대전(大田)을 말하는 것인지는 영수의 클릭 한 번으로 해결됐다. 대전광역시에서 메르스 확진 환자 4명이 늘어, 국내 감염자는 30명이 됐다. 일부 언론사는 “메르스 전국 확산”이라고 표제어로 과장 보도했다. 영수는 ‘서울경기와 대전이면 전국이 되는 건가’하고 생각했다. SNS에는 어제 떠돌아다녔던 예방책의 수정판이 오고갔다. “코에 바세린 바르는 것과는 상관이 없대.” 아직 사실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이다. 영수는 어젯밤 접했던 전문가들의 말을 떠올렸다. “메르스 사망자는 모두 기저질병이 있던 분들입니다. 건강한 분들은 감염되어도 사망 확률이 낮습니다.” “치사율 40%는 감염되었지만 가볍게 않고 지나간 이들이 분모에 포함되지 않아서 생긴 통계상 맹점입니다.” “메르스는 비말전염으로만 감염되니 같은 공간에서 숨 쉬는 것으로는 전염되지 않습니다. 재채기를 통한 작은 침이 호흡기로 들어갈 때 감염됩니다.” “현재는 지역사회가 아닌 병원 내에서만 감염이 이뤄진 상황입니다.” 영수는 과학적 지식을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이성의 문을 열수록 내면에 있던 일말의 두려움마저 사라졌다. 메르스 확산에 겁을 먹을 필요는 없지만 엄연한 현실을 무시해서도 안 될 일이었다. 그는 잠복기 2주가 끝나는 이번 주가 메르스 확산 여부에 중요한 시기라는 말도 기억했다.
영수는 기분 좋게 오후 근무에 임했다. 이 정도의 일로 학교나 회사가 하루를 쉰다는 것은 이성적 처사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다수 군중이 비이성에 거하면 리더는 군중의 확대를 막기 위해서라도 비이성적 처사를 감행해야 한다. 맹목은 타자의 맹목을 이끌거나 강요한다. 무서운 사실이다. 일하던 영수는, 포털사이트에 뜬 <메르스 '공기로 전염' 현실 되나>라는 기사를 보았다. 기사는 "메르스 바이러스가 확인된 지 2~3년밖에 안 돼서 알려진 게 적은 만큼 공기 감염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전문가의 말을 인용했다. 영수가 어젯밤 시청했던 프로그램에서 따 온 말이다. ‘이런 바보 같은 기사를 쓰다니!’ 영수가 시청한 바에 따르면, 그 전문가는 “메르스는 비말전염 질병”으로 밝혀졌지만, 그 무엇도 100% 확신할 수 없다는 과학자 특유의 신중함으로 옅은 가능성 하나를 열어둔 표현이었다. 기자는 그것을 족집게로 콕 집어들어, 교묘하게 다른 뉘앙스의 기사를 썼다. 영수는 기자에게 전화라도 걸어 “당신, 이 기사 확신하냐”고 따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전문가는 TV 대담에서 이런 말도 했다. “만약 공기로 전염된다면 우리나라 감염자가 수가 이미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겠죠.” 메르스는 공기로 전염되지 않지만, 맹목과 두려움은 메르스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공기로도 확산되는 중이다. 같은 시각, 중동에서는 낙타 한 마리가 코를 벌름거렸다. 숨을 쉬었지만 그것으로 메르스에 걸리지는 않았다. 갑자기 낙타는 재채기를 했다. 어디서 기침매너를 배웠는지 두 앞발을 들어 입을 막고서 말이다. 기특한 동물이다. (끝)
[사족]
1) 백신이 없다는 사실은 분명 위험요소지만, 백신이란 모든 질병의 뒤를 따르는 존재라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메르스는 발견된 지 3년 밖에 안 된 신생 질병이니, 백신의 부재는 인간의 무능이 아니라 병리학적 당연지사다. 병리학은 질병에 대한 투쟁의 역사다.
2) ‘세계 최초 3차 감염자’의 등장은 초기 대응 미숙이 문제이지, 그 사실이 질병의 강력함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최초라는 말이 사실이라면, 메르스가 초기 대응을 잘 하면 확산을 막을 수 있다는 말이니 오히려 메르스라는 질병에 겁을 낼 필요가 없음을 보여준다.
3) 천 명이 넘는 격리대상자는 환자와 접촉하여 감염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지, 확진된 이들은 아니다. 이들을 두고 나누는 ‘환자, 사망, 확산’ 등의 표현은 모두 전근대적 발상이다. 전망을 안일하게 낙관하는 일도, 확인되지 않은 정보로 두려움을 확산시키는 일도 지양해야 한다.
4) 근대에도 전근대적 단면은 존재했다. 현대에도 근대적 모습 뿐만 아니라 중세적 일면들이 존재한다. 21세기 한반도에는 지금, 근대적 이성의 세례를 받지 못한 중세적인 사람들이 등장했고, 국가 공익과 관련한 기사를 가십 다루는 태도로 쓰는 기자들이 존재한다.
5) 우리는 삶의 모든 것으로부터 배울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메르스도 물러가고 이를 둘러싼 온갖 담론도 잠잠해질 테지만, 언젠가는 제2, 제3의 메르스가 등장할 것이다. 돌고 도는 세상사, 우리는 이번 일을 통해 무엇을 배워야 할까. 하다못해 재채기 예절 하나라도 건져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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