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소설]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상수는 과장스럽고 성급하게 반응한다. 모든 이에게, 재빨리, 화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라도 지닌 듯이. 어떤 이가 “미처 일을 처리하지 못했습니다. 지난달에 바빴습니다.”라고 말하면, 상수는 그의 바빴다는 말이 끝맺기도 전에 “바쁘셨으니까”라고 메아리처럼 화답한다. 어느 날, 상수는 고객과 부동산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누가 보아도 60대 중반으로 볼만한 노인이었다. 대화 도중 노인의 휴대폰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끊은 노인이 “아까 말한 그 친구예요”라고 말하자, 상수는 노인의 말을 쫓았다. “아! 양평에 계신 분이요?” “아니 화곡동 친구.” “아! 골프장에 같이 가셨다는.” “그래요.” 상수의 퀴즈 맞추기식 대화가 아니었다면 불필요한 대화들이었다.
“제가 거래 때문에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정말 50대신 줄 알았어요.” 상수는 환심을 사기 위해 종종 자신의 마음을 속이거나 과장했다. 평생을 이리 살아왔기에 스스로를 기만하고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어느 강연에서 자기기만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후에는 자신이 정말 모르는지, 알면서도 익숙해진 것인지 상수 스스로도 헷갈릴 정도였다. 상수는 그의 말과 반응으로만 따지자면, 만나는 사람 모두를 엄청나게 아끼는 사람이었다. 항상 상대를 존중하는 느낌을 주었기에 모두가 상수를 좋아했다. 많은 여인들이 상수의 친절함과 자상함에 빠져들었다. 소수의 사람들만 상수의 본성과 그의 기만을 파악했다.
자기도 모르게 내뱉은, 진심보다 과장된 표현을 모두 감당해내는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 상수는 종종 자신의 말을 행동으로 증명하지 못했고, 내뱉은 약속들을 실천으로 걷어 들이지 못했다. 그의 말을 믿었다가 상처를 받은 순진한 여인이 자신의 몸을 연못에 던졌다. 이후부터 상수는 순진한 여인들을 조심했다. 그녀는 사라졌지만, 세상에는 여전히 거짓과 과장이 판을 쳤고 상수도 자기 몫을 보탰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한 아이가 오래 전 순진한 생명이 사라졌던 연못으로 돌을 던졌다. 연못의 파장은 정직했다. 큰 돌을 던지면 큰 동심원으로, 작은 돌을 던지면 작은 동심원으로 반응했다. 여름이면 구정물 같은 연못에서 아름다운 연꽃이 피었다. (끝)
[사족]
1) 상대의 환심을 사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 있다. 그런 성격을 지닌 이들 덕분에 세상이 밝아진다. (비록 진실이 아니더라도) 우리에게 멋있다, 잘했다, 예쁘다고 말해 주는 사람들은, 진실의 수호자는 아닐지라도, 우리를 기쁘게 한다.
2) 종종 그들의 가식에 속았더라도, 그들로부터 받은 즐거움이 있었다면, 화를 내기가 멋쩍다. 세상 모든 것은 양면성으로 존재하니 지혜는 양면성을 이해하는 일에 숨겨져 있다. 함박눈을 사랑한다면 겨울 추위는 어느 정도는 인정해야 하리라.
3) 순진한 이들은 세상의 한쪽만 바라본다. 기분 좋은 말을 해 준 이들을 좋아하기 십상이지만, 사람의 마음은 복합적이고 오묘하며 표리부동할 때도 많다. 무슨 일을 하든 투덜대는 사람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들이야말로 수용적이거나 정직한 사람일 수도 있다.
4) 항상 좋은 말을 해 주는 사람이라면 보기 드물게 훌륭하고 좋은 사람이거나 자기를 곧잘 기만하는 사람이다. 대부분의 경우 후자일 것이다. 그가 훌륭한 사람일지라도 우리가 항상 좋은 행동을 하지는 못하니까. 진실 직면은 괴롭지만 종종 진실을 마주해야 한다. 삶의 많은 고통은 진실 외면에서 기인한다.
5) 상수는 나쁜 사람인가? 누구나 악덕 하나쯤은 가졌다. 상수 역시 마찬가지다. 그도 마음을 고쳐먹고 타인의 환심을 사는 일보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아끼기 시작하면 아름다운 삶을 산다. 구정물에도 연꽃은 피고, 그것으로 연못은 아름다워진다. 일 년 내내 피어있지 않더라도 우리는 연못을 보면 여름날의 연꽃을 상상하고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