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소설] “자기야, 지수 잘 보고 있어야 돼. 그리고 세탁기에 빨래 꺼내서 좀 널어줘. 부탁해. 나 병원 갔다가 슈퍼 들렀다 올게.” 아이 엄마가 집을 나서며 말했다. 아이가 감기에 걸려 병원에 다녔는데 거의 다 나아서 마지막 약을 받으러 나간 참이었다. 아내는 ‘부탁’이라고 했지만,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말투였다. 그런 뉘앙스가 아니더라도 남편은 요즘 집안 분위기를 간파하고 있었다. 아내는 몇 달 전부터 신경이 부쩍 날카로워졌다. 세살 짜리 아이를 둔 친구는 아기가 10개월쯤 되면 한창 힘들 때라고 했다. 그 말은 때때로 위로가 되었지만, 짜증이 날 땐 내뱉고 싶은 말을 참아야 하는 재갈이 되기도 했다. 지난 주말이 그랬다.
평일에는 퇴근 후 몇 시간을 잘 견디면 되지만, 주말이면 하루 종일 아이 보랴, 아내 눈치 살피랴 일하는 것보다 더 지쳤다. 그러다가 일요일 저녁, 사소한 일로 목소리가 커져서 싸우기 직전까지 갔다. 지금은 왜 그랬는지 이유조차 생각나지 않으니 싸움의 시작은 사소한 일이었던 것 같다. 싸움이 어디 중대한 문제 때문이었던가. 작은 일에 대한 견해차나 서로를 대하는 태도에 대한 불만이 싸움의 주요 원인이었다. 그 날은 싸움이 커질 뻔한 순간에 남편이 참았다. 오늘은 회사 창립기념일이다. 집에서 보낼 수밖에 없는 하루를 무사히 넘겨야 한다는 마음 탓인지, 남편은 집에 있으면서도 얼마간 긴장하고 있었다.
“삐이!” 세탁기가 소리를 낸다. 남편은 아기를 업고 빨래를 꺼내어 베란다 건조대에 널었다. ‘탁탁 털어 널어야지’ 하는 아내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남편은 결혼 전 혼자서 자취할 때보다는 두 세배 신경 써서 빨래를 털었지만, 여느 주부의 평균치보다는 밑도는 수준이었다. 모든 남자가 허술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눈에는 그 차이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빈틈 많은 최선이었던 것이다. 남편은 쉬고 싶었다. 아기를 보행기에 앉혀 아이의 한 손을 맞잡고 팔을 흔들어 주면서 소파에 살포시 앉았다. 여느 때 같으면 소파에 몸을 던졌을 텐데, ‘아이가 있으니 작은 행동 하나까지도 제약을 받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24시간 제약 속에 살아가는 아내의 일상을 온전히 공감하지는 못했다.
아내가 돌아왔다. 건조대를 보고서 짜증 가득한 말로 남편을 질책했다. “이렇게 둘둘 말아 널면 쭈글쭈글 해지잖아. 왜 두 번 일하게 해!” 둘둘 말린 정도는 아니었지만 탁탁 털어 널린 수준도 아니었다. 남편이 지난번보다는 살뜰히 털었다는 사실, 그러니까 남편 입장에서의 작은 진보와 그나마 최선을 아내는 눈치 채지 못했다. 남자는 인정받음으로 춤을 추지만, 눈치 채지도 못한 노력을 인정하기는 힘든 노릇이었다. 그럴 여유가 없는 요즘이기도 했다. 아내의 짜증에 맞받아치기 힘든 것도 육아의 힘겨움을 어느 정도는 이해해서였다. 아내는 깔끔한 일처리에 미소 짓지만, 남편의 허술한 안목으로는 어떤 집안일을 두고 그것이 일감인지조차 인식 못하기 일쑤였다. 일일이 지적하려니 잔소리 같아, 아내는 남편에 대한 한심함을 종종 한숨으로 달랬다.
언젠가 남편이 나도 힘들다고 말했더니, 아내는 “당신이 뭐가 힘들어?”라고 응수했다. 남편은 아내를 이해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내가 원하는 수준으로 집안일을 처리하지는 못했다. 집안일은 깔끔하게 하나, 대충 하나 별반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고, 자신의 눈에는 결과물이 비슷하게 보였던 것이다. 아내의 눈에는 천지 차이로 보였는데도 말이다. 남편은 일주일이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집안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이 더 수월하고 편안했다. 일이 끝났는데도 회사에 머물던 상사가 이해되는 요즘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야근한다고 거짓말했던 적이 많지 않다. 그것이 남편의 아내 사랑이었고, 가족을 향한 노력이었다. (끝)
[사족]
1) 육아는 한 두 달의 문제가 아니다. 아기를 둔 부모라면 집안에서 내내 육아에 묶여 있기보다는 일하러 나가는 쪽이 잠깐의 해방일 수 있다. 아내든, 남편이든, 일하는 쪽이라면 ‘월화수목금금금’을 원할 수 있다는 말이다. 언젠가 육아도 인생의 한 시기로 추억할 테지만, 정작 그 시기를 통과할 때에는 우여곡절이 많다.
2) 어른들은 그 우여곡절이 행복이라고들 말한다. 그들도 젊었을 때에는 싸우고 지치고 힘들어했다는 점, 설사 진짜 행복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음미하는 이들이 극소수라는 점에서 절반만 맞는 소리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이를 키우며 울고 웃는 이 순간이 행복"이라는 어른들의 말을 두고두고 상기해야 하리라.
3) 아이가 잠들었을 때의 모습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울지 않고 잠들어 줘서 고마운 탓도 있지만, ‘이게 정말 내 새끼인가’ 하는 믿지 못할 경이와 감탄 또한 사실이다. 낳은 정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키우면서 겪게 되는 그 우여곡절, 다시 말해 경이와 감탄 그리고 힘겨움과 절망이 어우러져 빚어낸 '키우는 정'이 부모와 자녀를 끈끈하게 만든다. 수고가 깃들수록 기쁨이 커진다는 말은 육아에도 적용되는 게 아닐까.
4) 집안일이든, 직장일이든, '안목'으로 중요한 일을 찾아내어 '디테일'하게 끝내야 한다. 중요한 일은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내게 중요한 일이 아니라 회사 차원에서 중요한 일을 처리해야 한다. 내 관점이 아니라 집안일을 하는 사람(시어머니든, 아내든 집안일의 당사자)에게 중요한 일이 진짜 중요한 일이다. 진짜 중요한 일을 상대가 원하는 수준으로 처리하는 것이 일처리의 기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