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아름다운 명랑인생

[야구장 번개후기] 올해 첫 야구장 나들이

카잔 2008. 6. 6. 21:11

2008년 6월 5일, 야구장에 가다.

오후가 되며 날씨에 더욱 신경쓰였다.

날씨가 좋아야 잠실운동장에서 야구 경기가 열릴 것이고

그래야 와우4기 야구장 번개를 할 수 있을 테니까.


현대경제연구원 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4시 30분 경.

비가 더 이상 오지는 않을 듯한 하늘이었고,

한국야구위원회 홈피에 가 보니 야구 취소 공지가 올라오지도 않았다.

이만하면 됐다, 싶어 와우 4기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3명이 오겠다는 낭보를 접수!

가방을 울러메고 조금 일찍 집을 나섰다.

가방 안에는 과도와 책 한 권을 넣었다.

하늘을 보니 구름 사이로 막 햇살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마트에 들러 과일 등 이것 저것을 샀다. 25,250원어치나 샀다. ^^


잠실 종합운동장에 도착했다. 버거킹 해피팩 세트를 살까 말까 고민하다 결국 하나를 샀다.

경기장 입장료는 작년보다 천원이 올라 7,000원이었다.

3루 쪽으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하늘은 참으로 맑고 바람은 시원했다.

최근 몇 차례 비가 온 뒤라 공기도 아주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하나 둘 사람들이 도착하고 즐겁게 야구를 구경했다.


나는 이렇게 4기 와우팀원들과 조금씩 친해지고 싶었다.

삶을 살면서 서로를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고,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작은 체험을 공유함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친하고 편안한 존재가 되어가길 원했다.

이런 차원에서 어제는 퍽 소중한 경험을 함께한 날이었다.


나는 오렌지를 깎아 주고 싶어 과도를 들었다.

첫번째 오렌지는 잘 손질했다.

그런데, 두번째 오렌지를 잡고서는 문제가 생겼다.

힘을 주었던 과도가 오렌지를 두 동강 내고 내 손가락까지 푹, 하고 찔렀던 것이다...


헉.

헉.

헉.

이 생각을 하니
지금도 몸이 움츠러든다.

난 무섭고 징그러운 것을 잘 못 보는 편이다. (다 그런가? ^^)

뚝.

뚝.

뚝.

하고 피가 떨어졌냐고? 아니다.

피는 그렇게 떨어지지 않았다.


하고 샘솟듯 솟아오르더니 주르륵 흘러내렸다.


순간,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준비해 간 물수건으로 지혈을 하려고 베인 부분을 꼭 눌렀다.

금방 물수건이 빨갛게 젖었다. 휴지를 갖다 대었다.

그렇게 손을 잡고서 일이분 동안 야구를 보았다.

아직, 함께한 동행들은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피가 멈추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이들에게 알려야 했다.

아이. 정말 대수롭지 않은 일인데...


옆에 있던 팀원들에게 혹시 대일밴드 있냐고 물었다.

순간 무슨 일이 있음을 직감한 팀원들이 내 손을 바라보았다.

팀원들의 짧은 비명으로 앞 사람이 놀랐다.
혹시나 피가 자기에게 튀었나 싶어 몸을 뒤척이길래 안심 시켜 주었다.
"그 쪽으로 피가 튀지는 않았습니다. 염려 마세요." ^^


다량의 휴지가 나에게 공수되었다.

한 팀원이 손을 심장보다 위로 올리고 베인 부분을 꼬옥 누르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

앉은 자리에서 할 수 없어서 출입구 쪽으로 나갔다.

팀원 두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어딜 갔지?

그들은 잠시 후에 야구장 응급 처치 요원 스텝과 함께 나타났다.

그렇게 나는 응급 처치를 했다. 이제 됐다... 싶었는데 순간 현기증이 났다.

나를 데리고 병원에 가려는 3명의 여인을 설득하기에 좋은 구실이다.


나는 머리가 어지럽다는 핑계로 잠깐 앉겠다고 했다. (현기증은 사실이었다.)

이 때 이들은 모두 가방을 싸고 병원에 갈 태세였다.

병원에는 가기 싫었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면, 병원에 갈 만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병원은 죽을 만큼 아파야 가는 곳으로 생각되는 곳이었다. 무식 그 자체다!)
멍하니 출입구 편에 서서 손을 들고 야구를 보면서도 이런 생각을 했다.


'병원에 갈까? 아냐.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닌데 뭘.

전쟁 중이라면 이만한 일은 말도 못 꺼낼 일인걸.
(머릿 속에는 영화에서 본 전쟁 장면이 떠올랐다.)

지혈만 되면 안 가도 될꺼야. 며칠 지나면 자연적으로 치유될꺼야.'


이것이 무식하고 답답한 나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녀들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우선 내가 걱정이 되었을 것이고,

내가 그들 중 일원이었다면 억지로라도 이 무식한 환자를 끌고 갔을 게다.


그런데, 내가 이겼다.

잠시 앉아 있겠다고 했던 내가 계속 야구를 보고 있자 모두들 다시 내 옆에 앉았다.

내가 던진 한 마디. "자, 이제 야구를 봅시다. 끝까지 봐야지요."

와우팀원들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하하.


다행히도 야구는 우리가 응원하던 팀이 4:3으로 이겼다.

즐겁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잠시 얘기를 나누고 갈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팀원들은 나와는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택시승강장으로 가더니 병원에 가자는 것이었다.

또 한 번 고집을 부릴 수는 없었다.

결국, 나는 난생처음 종합병원 응급실에 끌려갔다.

나의 상태가 응급했던 것이 아니라, 시각이 너무 늦었기에.


우여곡절 끝에 나는 봉합을 했다.

의사가 상처간 부위를 자기 손으로 긁으며 느낌을 물었다.

나는 느껴지는 그대로 대답했고, 신경에 이상은 없다고 했다.

엑스레이를 찍고 나더니 그냥 꿰매면 된단다.

또 다시 떠오르는 생각. '그래... 이 정도면 안 와도 되는 것 아냐?'

결국 여섯 바늘을 꿰매고 손가락에 작은 붕대를 감고 나왔다.


아.

아.

26, 7년 만에 외상 때문에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것 같다.

와우팀원들의 따뜻한 마음에 기분이 좋았다.

아주 특별한 체험을 함께(!) 한 것 같아 의미 있는 날이 되었다.

그들도 나의 진짜 모습을 조금 더 알게 되었을 것이다.


와우팀장은 이런 사람이고
그들은 나와 어떻게 관계 맺을지에 대해서 이전보다 조금 더 감을 잡았으리라.

우리는 자신이 가진 것으로 서로를 돕는 사람들이다.

아주 많이 가진 양 과장하려 하거나 아무 것도 없는 양 점잔 뺄 필요가 없다.


나는 어제도 참 나답게 살았다.

준비하고 싶은 대로 준비했고, (사실 음식이 좀 많았다. ^^)

과일을 깎아주고 싶어서 오렌지에 과도를 댔다.

4기들과 함께 하고 싶어서 전화를 했고,

3명의 팀원들과 야구장에 함께 갔었다.

어제 내가 원치 않았던 것은 딱 하나, 과도가 내 손을 밴 것 뿐이었다. ^^


상처 덕분에 어제는 아주 늦게 잠들었다.

늦게 귀가한 데다가 한쪽 손을 쓸 수가 없으니 샤워를 하는 데도 꽤나 많은 시간이 걸렸던 게다.

하지만, 한 팀원이 가르쳐 준 방식대로 손에 비닐장갑을 끼니 샤워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다치고 나니 특별한 날이 된 것 같아 잠이 쉬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이산]을 보았다. 그러다가 잠이 든 것 같다.


오늘 또 병원에 다녀왔다.

다행히도 내일 떠날 베트남 여행에는 큰 지장이 없다.

조금 불편하겠지만 어찌 할 수 없는 일이다.


갑자기 병원에 갔던 짧은 순간이 떠오른다.

아산병원 응급실에는 그 밤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 중 몇 명은 지금도 고통스러워 할 것이다.

세상에는 아픈 사람이 많다. 그들 모두가 힘을 내기를.


그리고, 한 가지를 뼈저리게 느낀다.

건강한 것이 내가 사랑하는 이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임을.

만약 내 아내가 있을 때 과도에 베면 당장 병원에 달려가야지. ^^

[PS] 세 명의 와우팀원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그들 덕분에 아파도 즐거웠고 손가락이 쓰라려도 마음은 따뜻했다.

글 : 한국성과향상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