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때, 나는 세현이를 참 좋아했습니다.
매너가 좋았고 명랑했던 같은 반 친구였습니다.
항상 깨끗한 교복을 입고 다닌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어떤 녀석은 꾀죄죄한 교복을 입고 다니기도 했으니까요.
마치 이성을 사랑하듯 애틋하게 아꼈던 기억이 선합니다.
같은 동네에 살지도 않았지만 시험 기간이 되면
세현이네 동네에 있는 독서실에 다니곤 했습니다.
공부를 썩 잘 했던 친구인데 무얼 물어보았던 기억은 없네요.
함께 모이면 공부는 뒷전이고 놀기에 빠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저도 공부를 곧잘 해서 물어볼 필요가 없었는지도.
세현이네 집에도 여러번 놀러 갔습니다.
우방 1차였나, 뭐 이런 류의 이름을 가진 아파트였습니다.
집 구조도 기억이 나고, 어머님 아버님의 모습도 기억납니다.
어린 시절의 이런 기억들은 근래의 기억들을 압도합니다.
강연 후 받았던 찬사, 수입이 좋았던 날의 기쁨마저도.
우리는 오랫동안 소식을 모른 채 지나다가
2008년에 연락이 닿은 이후 종종 만나 이야기를 나눕니다.
최근에는 선거 하루 전날에 함께 저녁 식사를 했었죠.
10개월 만의 만남이었네요. 세현이는 구청에서 일하는 공무원입니다.
지금은 총무팀에 있지만 예전엔 선거 관련 업무를 했었습니다.
투표하기 전 세현이에게 뭔가 조언을 들으려고 만났지만
학창 시절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유쾌한 시간을 보냈을 뿐입니다.
추억의 퍼즐 맞추기는 아주 즐거운 일이더군요.
"아! 맞다, 맞아" 하며 하나씩 기억해 내는 유쾌함이 있습니다.
우애와 소박한 추억들은 행복의 다른 이름이었습니다.
그간의 세월을 어떻게 보냈든 우리는 어린 시절을
소중히 여기며 아주 오랫동안 기억하나 봅니다.
식사를 마치고 인적 드문 찻길을 걸으며 세현이가 말했습니다.
"가는 길이 달라 연락이 끊어지게 된 친구들을 생각하면 안타까운데,
네가 잘 되어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 요즘엔 친구들이 삶을 잘 사는 것이 고맙더라."
'내가 잘 살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세현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건강하고 아침에 일어나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니까요.
이런저런 근심과 고민은 삶을 이루는 근본 요소일 테고요.
아무런 문제와 걱정이 없다면 삶이 아닌 죽음의 상태겠지요.
친구가 건강하고 어엿한 직업인이니 좋았습니다.
아내도 건강하고, 아가도 잘 자라고 있답니다.
나 역시 할 일이 있고 건강합니다.
아내와 아가는 없지만 날마다 자라나는 원고가 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행복했습니다. 우정과 추억의 힘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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