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9월, 나는 서울로 왔다. '무작정 상경'이었다. 모든 형용어가 그렇듯이 '무작정'이라는 말을 붙이는 데에도 어떠한 조건이 있을 것이다. 주머니에 돈이 많지 않아야 하고, 도착할 그 곳에 연고가 없어야 하고, 별다른 계획이 없어야 한다? 이런 정도의 조건이면 되지 않을까? 나는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하지는 못했기에 어쩌면 '무작정'이라는 말은 다소 과장된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회사가 정해진 것 외에는 다른 계획이 없었다는 점과 환경의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고 지냈다는 점에서 큰 불찰은 아닐 것이다.
나는 한국리더십센터에 입사했다. 이는 내가 입사하고 싶었던 두 개의 회사 중 하나였다. (다른 하나는 '이코노미21'이라는 경제 잡지사였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은 행복을 주었다. 나는 회사 출근이 즐거웠다. 출퇴근마다 건대입구역에서의 환승은 피하고 싶은 과정이지만, 견딜 수 있었다. 도착지를 열망하기에 과정의 힘겨움을 참아내는 이치였다. 나는 7시 30분이면 회사에 도착했다. 회사는 논현동에 있었다. 이른 아침, 학동역 출구를 걸어오르며 보이기 시작하는 하늘은 내게 상쾌한 기운을 불어넣었다.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이모할머니 댁에서 지냈다. 방한칸, 주방 한칸 짜리로 5~6평 되는 소형 아파트에서 외할머니와 이모할머니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살았다. 그것도 다행이었다. 월세를 살기도 어려울 만큼 돈이 넉넉치 않았던 터였으니까. 서울에 올라오기 직전까지 대학생이었던 내게 돈이 있을리 만무했다. 차비에 보태라고 삼촌이 주신 10만원이 전부였다. 곧 월급을 받을테니, 극구 받기를 거부했지만 삼촌을 뿌리칠 순 없었다. 그 때, 나는 경제적 독립을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만만치 않았다. 3개월의 수습 기간 동안 받은 월급은 70만원이었다.
70만원으로 생활하기엔 힘겨움이 있었다. 상황을 악화시킨 것은 생애 최초의 노트북 구매였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쓰겠다는 생각으로 구입하긴 했지만, 270만원이라는 가격은 꽤나 비쌌다. 9개월 할부로 샀으니 매달 70만원 중 30만원은 할부금으로 나갔다. 그리고 15만원은 생활비로 보탰다. 거기서 다시 통신비와 교통비를 제외하면 내 용돈은 극히 적었다. 돈이 떨어지면 점심을 굶었다. 회사에는 두 개의 큰 강의장이 있었고, 점심 시간이면 그곳은 빈 공간이 된다. 모두들 점심 식사를 하러 갈 때 나는 슬쩍 빠져나와 강의장으로 갔다.
강의장에는 정수기가 있었다. 나는 컵에다가 두어 잔 물을 받아 배를 채우고 의자에 앉아 잠시 낮잠을 자곤 했다. 돌이켜보는 지금에는 서글픈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당시의 나는 전혀 서럽거나 슬퍼하지 않았다. 빈 손으로 서울에 올라왔으니 초기의 어려움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생각으로 지냈는지, 아니면 타고난 긍정성으로 앞날을 기대하며 마냥 기뻐했는지 정확한 기억은 없다. 확실한 것은, 점심을 굶은 적이 여러 번 있었다는 사실이고 그것은 꿈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당연한 과정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한 번은 직속 상사가 강의장에서 잠들어 있던 나를 깨웠던 적이 있다. 일어나 시계부터 확인했는데, 아직 점심 시간은 10~20분 남았었다. 안심이 되었다. 상사는, 왜 여기서 자고 있냐고, 밥은 먹었냐고 물었다. 먹고 와서 잠시 쉬는 중이라고 대답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때에도 괜히 나를 비극의 주인공으로 몰아가며 슬픔을 음미하기보다는 그저 감추고 싶은 비밀을 잘 지켜냈는지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난 가난한 직장 생활을 했다고 인식하지도 못했다. 차비가 없어 걸어다닌 적은 없고, 값비싼 노트북을 들고 다녀서 그랬을까? 가끔 점심식사를 거를 정도였고, 술자리를 갖는 등의 돈 드는 여가 생활을 못했을 뿐으로 기억한다.
일요일엔 교회에 다녀오면 시간이 좀 남았다. 그럴 땐 집에서 두분의 할머니와 민화투를 치곤 했다. 나도 재밌기도 했고, 두 분과 시간을 보내는 데서 오는 자식된 도리를 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돈도 들지 않으니 괜찮은 여가였다. 하지만, 휴일의 하루를 모두 보내기에는 집안은 다소 비좁았다. 외출을 해도, 만날 사람도 갈만한 곳도 없었다. 그럴 때, 주로 서점에 가서 책을 읽다 오거나 레코드샵에서 음악을 듣다가 왔다. 물론 구입할 돈은 없었기에 집으로 오는 길은 빈 손이다.
가끔씩은 지하철 여행을 했다. 한번은 일요일 오후에 전철을 타고 인천으로 갔다. 바다가 보고 싶었다. 인천역에서 내렸던가, 동인천역에서 내렸던가? 아무튼 나는 자유공원과 화교거리를 돌아다녔다. 그리고 반대편으로 내려와 월미도로 구경하고 왔다. 식사를 했던 기억은 없다. 아마도 늦은 오후에 집으로 돌아와 저녁식사를 했을 것이다. 이것이 나의 휴일 여가 생활이었다. 고향인 대구에는 친구들이 많은 편이었지만, 서울에서는 아직 함께 주말을 보낼만한 친구가 없던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주말은 외롭진 않았다.
혼자서도 잘 놀았던 덕분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내게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꿈이 있었기에 종종 점심을 굶어도, 주머니가 가벼워도 마음만큼은 든든했다. 단지 꿈만으로 그 시절의 무료함과 넉넉치 못한 주머니 사정을 넘어섰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사실이 그랬다. 집에 있을 때, 두 분께서 TV를 보실 때면 나는 노트북을 열어 글을 썼다. 당시 쓴 글은 '너에게 보내는 드림레터'라는 연재물로, 내 삶의 이야기와 자기경영 메시지를 담은 글이었다. 어둡거나 비관적이지 않았다. 근거 없는 자신감과 긍정의 마인드로 가득한 글들이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꿈을 가졌고, 그 꿈을 향해 조금씩 전진해간다는 생각 때문이리라. (당시에 썼던 글들을 더 이상 볼 수 없음은 괴로운 일이지만, 이것 역시 내 인생이다.)
나의 꿈은 기업교육 강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책을 써서 작가가 되고 싶었다. 언젠가 책을 내겠다는 생각이 있었다고 해서 체계적으로 글쓰기 연습을 해 온 것은 아니다. 그저 시간이 나면 글을 썼다. 그 시간은 퍽 즐거웠다. 때때로 이른 새벽에 글을 쓰기도 했는데, 나를 깨운 것은 좋은 책을 출간하고 싶다는 꿈이었다. 글을 쓰다가 출근 시간이 되면 집을 나서던 시절이었다. 새벽에 일어나면 글만 쓴 것은 아니다. 언젠가 하게 될 강연 PPT를 만들기도 했고 강연을 준비하기 위해 자료를 만들기도 했다. 간혹 교회 청년부의 강연을 의뢰받기도 했지만, 더 많은 경우는 의뢰받지 않은 강연을 준비하거나 청탁도 없는 원고를 쓰는 것이었다.
나는 분명 아마추어였다. 아마추어란 단어의 어원은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즉 무엇인가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마추어다. 프로는 곧 돈을 받는다는 점에서 아마추어와 다르고, 아마추어보다 수준이 높다. 하지만, 아마추어는 보상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프로보다 뜨거운 열정을 지닐 수 있다. 더 큰 행복감을 맛볼 수도 있다. 물론, 프로들이 아마추어의 열정까지 지니고 있다면 돈을 보너스로 받는 셈이지만, 아마추어 때의 순수한 열정을 잃어버린 프로도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마추어의 반대말은 전문가가 아니라 겉치레, 따분함, 냉담함이라고 한 에릭 부스의 지적은 옳다.
나는 내 글쓰기 실력과 강연으로 돈을 벌 수 있을 만큼의 프로는 아니었지만, 내 일을 사랑하여 열정적으로 강연을 준비하고 글을 썼던 진정한 아마추어였다. 한 때 열의에 찬 아마추어로 살아보지 않고서는 탁월한 프로로 성장할 수도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언젠가는 진정한 프로가 되기를 꿈꾸는 아마추어였다. 그 때는 아마추어와 프로의 개념에 대해 알지 못했지만, 내게는 꿈이 있었고, 직장 생활은 그 꿈으로 가는 가교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나는 행복한 아마추어였다. 배고픔도 잊을 수 있고, 주말의 덩어리 시간도 혼자 즐길 수 있는 나만의 일을 가졌으니까. 지금 돌이켜보니, 나만의 세계를 가지기 위한 준비는 이미 그때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내 나이 스물 다섯의 일들이다.
자기경영지식인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 ceo@youni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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