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아름다운 명랑인생

인생이 주는 선물을 만끽하며

카잔 2013. 6. 1. 20:15


메일 하나가 왔다. 고려대학교에서 진행된 강연에서 만났고, 여러 번의 수업을 통해 나를 선생이라 부르는 녀석이다. 사제지간이 된 셈이다. 나는 아직도 선생과 제자라는 관계에서 내가 선생이 되는 것이 어색하다. 학교 선생님도, 교수님도 아니어서 그런 것 같다. 선생이라 불러주는 이에게 종종 황송하고 고마운 마음이 드는 것은 '내가 무슨 선생인가?'하는 마음 때문이리라. 그러다가도 선생 질을 그럴듯하게 해낸 후면 스스로를 좋은 선생이라 여길 때도 있으니, 내 마음인데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다음은 수신한 메일의 주요 내용이다.  


종일 흐린 날씨덕에 더위가 누그러진건 좋지만 오늘따라 바람이 유난히 차네요.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혹여 감기는 걸리지 않으셨는지, 걱정됩니다. 올해 10대 목표 중 하나가 빈말하지 않기, 였는데 다음번에 따블로 인사드리겠단 말을 해놓곤 아무 연락 없이 발길을 끊었으니... 벌써부터 깨진 다짐에 슬프고 무엇보다 선생님과의 신뢰가 무너졌단 생각에 마음이 아픕니다.

구직활동에 전념하기로 한 뒤로, 지난 일 년간 제게 많은 깨달음과 기쁨을 주신 선생님께 꼭 인사를 드려야지 하고 마음먹었지만, 한번 때를 놓친 인사는 날이 갈수록 죄송한 마음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나 지금껏 절 침묵하게 만들었네요.

장황하게 주절주절 썼지만, 요는,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는 말입니다. 좀 더 일찍 제대로 인사 못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그리고 선생님과의 인연 앞으로도 쭉 이어나가고 싶다던 엠티때의 제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조금 더 욕심을 부리자면.... 찾아뵙지 않고 또 메일 뒤에 숨는 저를 용서해주세요.  


샘의 안식년이 다채롭고 황홀한 나날들이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이어질 와우에서 리더와 팀원으로 다시 뵙고 싶습니다. 항상 건강 또 건강하세요.

녀석은 상대를 향한 정성과 도리를 다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메일의 시작은 날씨로 문안해야만 마음이 편해지는가 보다. 빈말을 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에서 진정성을, 모든 말에 책임을 지려는 모습에서 안쓰러움을 느꼈다. 그가 가여워서가 아니라 나랑 비슷해서 말이다. 한번 때를 놓친 인사로 인한 죄송함은 날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그녀에게 중요한 건, 구직 활동이지 내게 안부를 전하는 일이 아님을, 나는 안다. 이런 선생의 마음을 헤아려 미안함을 덜어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메일을 썼다. 수요일에 수신했지만 토요일이 되서야 회신했다. 시급한 회신을 요하지 않는 안부메일은 종종 이렇게 주말의 여유를 이용하니 마음이 편하다. 세상이 좀 더 느린 속도로 돌아가면 좋겠다. 보낸 메일의 내용은 이렇다. 


준희야, 메일 고맙다. ^^

메일 뒤에 숨는다는 표현, 좋구나. 

역시 글쓰는 재능이 있는 준희다. 


네가 메일을 느즈막이 보낸 것은 

더 좋은 타이밍에, 더 멋진 모습으로 

연락하려는 정성스러운 마음 탓이기도 할 테니, 너무 미안해 마시게.

다행하게도 네 그 마음을 엿보았으니 말이다. 


다만, 그런 네 진정성이 

연락의 때를 자주 놓치게 만든다면

때로는 있는 그대로 상대에게 다가가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만 기억하렴. ^^


지금은 네가 취업에 듬뿍 시간을 주어야 하는 때겠구나. 

나는 준희가 좋은 곳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하기를 바란다. 

그러니 네게 실망하지도 않았고, 보내준 메일이 고맙기만 하다.

열심히 살다가 어느 좋은 날이 되면 반갑게 만나자. 


5월이 가고 새로운 달이 시작되었구나.

계절의 여왕은 지나갔지만

항상 네 인생의 여왕으로 살거라. 


누군가에게, 편안한 마음으로 안부 메일 하나 쓰는 것만으로도, 따뜻한 여유가 나를 어루만지고 소소한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 이런 행복은 누가 준 것인가. 준희가 준 건가? 아니면 나 스스로가? 아니, 인생이 우리 모두에게 선사한 것이 아닐까? 관계로부터 오는 따뜻한 행복 말이다. 이것은 누구나 받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놓치고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준희야, 우리는 인생이 주는 이 선물을 만끽하며 살자. 


6월이 되었으니 초여름의 푸르름을,

토요일 밤이 되었으니 주말의 여유로움을,

너도 나도 다 큰 어른이 되었으니 성인의 자유를 만끽하자.

나이가 자유를 주는 것은 아니니, 영혼의 성인이 되자.


하늘을 보거라. 기분 좋은 바람이 분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바람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를 기분좋게 만드는 것들을 추구하며 살자.

믿음, 희망, 신뢰, 진정성 그리고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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