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자마자 재즈를 들었다. 듀크 엘링턴과 콜맨 호킨스가 만나 함께 연주했던 <Limbo Jazz>를, 나는 대학 1학년 때 처음 들었다. 대학 생활에 재미를 붙이지 못하던 중이었다. 공부도 재미 없었고 과 동기들과도 어울리지 못했다. 전공수업으로 청강하던 정역학과 공업수학이란 과목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대학 첫 수업 때 바로 알았다. 길을 잘못 들어선 운전자처럼 당황했던 시절이었다.
그때 내게 힘을 주었던 것은 신앙생활과 독서였다. 두 가지와 함께 언급하기엔 영향력이 적지만, 음악 역시 내게 도움을 두었다. 음악은 내게 때로는 휴식으로, 때로는 기쁨으로, 때로는 영감으로 삶의 비타민과 같은 역할을 해 주었다. 비타민은 필수 영양소다. 하지만 소량만이 필요하다. 음악은 내 삶에 즐거움을 주는 필수품이지만, 항상 음악을 들을 필요는 없다. 들을 때마다 활력소를 얻고 행복해진다. 오늘도 그랬다.
침대 위에 누워서 노트북으로 <Limbo Jazz>를 들었다. 푹신한 침대 위로 감미로운 음악이 스며들어 내 몸을 감쌌다. 음악은 나를 들어올려 십육전의 어느 봄날로 데려갔다. 그곳에는 스무 살의 청년이 캠퍼스 사이를 걸어가고 있었다. 다음 수업을 듣기 위해 강의실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강의 시작 20분 전 즈음 도착한 그는 잠깐의 여유시간 동안 음악을 듣기 위해 휴대용 CD Player를 켰다. <Limbo Jazz>가 흘러나왔다. 첫 소절부터 그를 사로잡았다.
그의 마음에 활력이 솟아났다. 강의실에 신선한 공기가 불어든 것 같았다. 피아노와 색소폰이 주거니 받거니 하며 진행하는 멜로디는 경쾌함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그는 경쾌한 <Limbo Jazz>처럼 살자고 생각했다. 오래가지는 못한 결심이었지만, 수업을 열심히 들어보자는 다짐도 했다. 그는 이 곡을 좋아하게 됐다. 재즈는 대학 생활의 지난함을 덜어주었다. 공강 시간에는 CDP로, 친구와 만나 저녁에 재즈바에 가는 것으로.
다시 침대 위로 돌아왔다. 나는 스무 살도 아니고, 대학생도 아니다. 전공 공부로 힘겨워 할 일도 없다. (그보다 더 힘겨운 일들이 종종 찾아오긴 하지만, 그것 모두가 인생이다.) 세월은 흘렀고 나는 삼십 대 중반의 사내가 되었다. 지금은 시드니를 여행 중이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떠서 재즈를 들었다. 재즈는 스무 살 시절의 추억을 되살렸고, 나는 잠시 추억 속을 거닐었다. 왠지 모르게 그 시절이 그립기도 했다.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잠시' 했다. "아! 이게 행복이구나."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다. 나를 즐겁게 하는 음악이 있고, 그 음악에 오롯이 빠져들어 시간을 보냈던 순간은 분명 행복이었다.
잇달아 서너 곡을 더 들었다. 데이브 브루브벡의 <Take Five>, 베니 굿맨의 <sing sing sing> 등 주로 아침에 들으면 좋은 곡들을. 누군가가 이 포스팅을 읽을 때가 아침인 것만은 아닐 테니, 내가 밤에 듣는 곡들도 적어 본다. 존 콜트레인의 발라드 곡과 이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스탄 겟츠와 리 모건의 곡들을 듣는 편이다. 콜트레인의 <say it>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인데, 들어보시면 내가 어떤 느낌의 재즈곡을 좋아하는지 감을 잡으실 것이다. 나는 달콤한 곡이라 생각하는데, 다른 이들은 끈적끈적하고 느끼하다고 말들을 하시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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