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어른들과 바다에 가면 아쉬움을 안고 돌아서곤 했다. 바다를 보고 있으면 이런 저런 감상에 젖게 되고 생각이 많아지곤 했다. 그래서 조금 더 바닷가를 거닐고 싶은데, 어른들은 이제 그만 가자고 한다. 이렇게 잠깐 볼 거면 왜 이 먼 곳까지 왔나,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따라나서야 했다.
혼자서 바다에 갈 수 있는 나이가 되고서는 홀로 바다에 가곤 했다. 여자 친구와 추억을 만들기 위해 당일치기 포항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고, 동생과 함께 여행을 하며 나의 앞날에 대해 계획을 세우기 위해 1박 2일로 강릉에 다녀오기도 했다. 연인과 헤어지고 난 후에는 이별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홀로 훌쩍 2박 3일 동안 바다 곁에 머물다 오기도 했다.
나는 머무르고 싶은 만큼 바다 곁에 있었다. 모래사장에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보기도 하고, 백사장을 거닐며 사색에 잠기기도 했다. 한동안 바다를 바라보며 위로와 용기를 얻기도 했다. 예민한 감수성을 지녔던 10대 때에는 바닷가에 서서 시를 짓기도 했다. 유치하긴 하지만 지금은 가지지 못한 감성이 선물한 추억들이다.
장기곶 바닷가에서
끊임없는 부서짐의 새하얀 물결은
내 맘속의 모든 괴로움들을 씻어주었습니다
저어기 보이는 수평선 너머의 머나먼 곳에
우리와 다른 사람들의 나라가 있듯이
나의 미래 언젠가에는 또 다른
나만의 그대가 있을 거라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바다 위 갈매기의 자유로운 날갯짓처럼
이 세상을 한껏 누리며 살아보리라는 소망도 생겼습니다
이 땅의 끝을 잡고
난 참으로 많이 자랐습니다
바다님께 비나이다
바다님께 비나이다
내 마음 앗아간 그녀를 꾸중하여 주옵소서
마음이 없어 가슴이 뚫린 저를 가엾이 여기어
그녀를 꾸중하여 주소서
그녀에게 빨리 내 마음 돌려 주게 하시던지 아니면
그녀 사랑으로 내 마음 가득 채워 주시던지
제발 어떻게 하여 주옵소서
이왕이면 그녀 사랑으로 제 마음 채워 주옵소서
바다님께 간절히 비나이다
그냥 꾸중만 하시지 제발 벌주시진 마옵소서
그녀에게 벌주시면 제 마음 그녀가 갖고 있기에
제 마음까지 아프니 제발 벌주시진 마옵소서
그냥 그녀에게 제가 어려워하고 있다고
힘들다고 전해주시어
나를 구원하여 주옵소서
얼마 전, 두 명의 지인과 바다에 갔었다. 30대 초반 두 명과 20대 초반 한 명이었다. 10여 분 있으려니 나를 포함한 30대 두 명은 어서 가자고 하는데, 20대는 아쉬운 눈치다.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아마도 그는 감수성에 젖어 그 감상을 놓치고 싶지 않으리라. “어렸을 적 바다에 왔을 때에는 서두르듯 가자고 하는 어른들이 이해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내가 그러고 있네”라고 말했다. 20대인 그는 자기가 지금 그 생각을 했다고 말하며 놀란다.
아! 무엇이 나에게서 감수성과 여유를 앗아갔는가? 이것이 어른스러운 것인가? 아니, 인생의 단계마다 가지게 되는 특성이 있을 터이고 나는 지금의 내 나이에 걸맞는 특성으로 갈아탔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대의 감수성은 놓치고 싶지 않다. 가을이 되면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깊은 사색에 잠기고 싶다. 바닷가에 가면 수십 분 머무르며 감상에 젖어들고 싶다. 그렇게 감수성 풍부한 10대처럼 살고 싶다.
글 : 한국성과향상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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