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아름다운 명랑인생

스승의 날 #1. 16년 만에 찾아 뵙는 그리운 선생님

카잔 2008. 5. 15. 20:34

 

아침 7 52.

차창 밖으로 봄 햇살을 기대했는데 짙은 안개가 산을 뒤덮고 지면까지 내려와 있다. 마산에서 대구로 향하는 열차 안의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약간의 허기를 느낀다. 간밤에 충분한 잠을 자지 못하여 눈이 조금 따끔거리기도 하고, 이로 인해 기분이 그리 상쾌하지 않다. 생수라도 하나 사 먹고 싶은데 출발한 지 한 시간이 지나도록 음료카트는 흔적도 없다. 봄 햇살이 비치면 안개가 소리 없이 사라질 것이다. 찌뿌둥한 기분도 안개처럼 사라지면 좋겠다.

 

오늘은 스승의 날이다.

놀랍게도, 스승의 날임을 인식하여 키보드로 오........, 라고 두드리는 순간,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참으로 기다렸던 날이 아니던가. 그래! 나는 이 날을 기다렸다. 5월 초였던가, 4월 말이었던가? 올해는 꼭 학창 시절의 은사님을 찾아 뵈어야지, 하고 다짐했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분은 중학교 때 수학을 가르쳐 주셨던 배수경 선생님이다. 고등학교 때의 현정국 선생님, 전광춘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분들도 만나 뵙고 싶었다. 하지만 하루 만에 모든 분들을 만나 뵐 수는 없을 게다.

 

어렵지 않게 만나 뵐 분들을 결정했다. 고등학교 단짝 친구들과 함께 협성고 전광춘 선생님을 찾아 뵙기로 했다. 친구 상욱, 수범과 함께 가면 좋을 게다. 2학년 때, 우리는 같은 반이었고 그 때의 담임이 전광춘 선생님이다. 수범이는 회사 때문에 함께하지 못하고, 상욱이와 나는 시간을 맞추었고,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

 

우리는 오늘 11시쯤 만날 것이다. 그 놈과 함께 13, 14년 전의 추억 속으로 걸어 들어갈테지. 학창시절, 우리는 늘 함께 했다. 함께 밤늦게까지 공부했고, 함께 간식을 사 먹었다. 주말이면 학교 근처의 스파(spa)에 가서 피로를 녹였다. 그런 추억과 더불어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셨던 선생님을 찾아볼 수 있다니. 아직 실감이 나지 않지만 기분은 한결 나아졌다.

 

협성고 방문보다 이른 시각에 나는 모교인 오성중학교에 먼저 들를 것이다. 배수경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서다. 담임 선생님도 아니셨는데 나를 이런 저런 모양으로 돌봐 주셨던 분이다. 그리고 참 고우신 분이셨다. 선생님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지금, 갑자기 16년 전의 몇 가지 사건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많은 남학생들이 선생님을 좋아했던 기억, 나의 고등학교 진학 결정을 두고 함께 걱정해 주셨던 기억, 학원 선생님이셨던 당신의 친구를 통해 학원에 다니도록 배려해 주셨던 기억 등이 떠오른다. 나에게 한 권의 시집을 선물해 주시기도 하셨다. “선생님은 희석이가 인문계로 진학했으면 좋겠다”고 천천히 또박또박 말씀하셨던 장면은 여전히 생생히 기억이 난다. 그 목소리는 16년 동안 종종 나의 귓가에 들려왔다.

 

한 시간쯤 후면 배수경 선생님을 만날 것이다. 내 인생에 은사님으로 남아 있는 배수경 선생님. 매년 스승의 날이면 선생님께 전화라도 드리려고 인터넷 이곳저곳을 뒤지곤 했다. 어디에서 본 기억인지는 모르겠지만, 782-XXXX라는 번호가 선생님 댁이었던 것 같아 한두 번 전화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잘못된 번호였던지 연결이 되지 않았다.

 

그 동안 어찌 지내셨을까? 나를 단번에 알아보실까? 인사드리며 내가 누군지 맞히실 때까지 웃고만 있어볼까?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고 계실테지. ! 떨린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배수경 선생님을 만나는 것 역시 실감이 나지 않는다. 십 수 년의 세월 동안 품어 온 감사함의 마음을 전할 생각을 하니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 한 숨을 내쉰다. 긴장 되나 보다. 에공.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당시는 어머니를 하늘 나라로 떠나보내 드린 시기니, 그 슬픈 기억이 함께 찾아올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면 울지도 모르는데.. ^^

 

배수경 선생님을 만날 생각을 하니 기분이 완전히 나아졌다. 창밖을 바라보니 어느 새 햇살이 가득하다. 안개가 몽땅 걷혀졌음은 물론이다. 햇살과 안개가 함께 하지 않듯, 감사한 마음, 보고 싶은 마음도 방금 전의 우중충한 기분과 함께 하지 않나 보다. 지금 나는 두근거림과 설렘, 약간의 긴장감과 떨림을 느끼고 있다.

 

2007년 초에 옷을 구입한 이후로 여태가지 티셔츠 한 장 구입한 적이 없었는데, 어젯밤에는 셔츠 하나와 넥타이를 샀다. 선생님께 조금이라도 더 예쁜 모습으로 찾아가고픈 까닭이다. 구김이 지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1 2일용으로 입고 온 짙은 쥐색 셔츠가 있었는데, 색상이 마음에 들지 않아 구입한 것이다. 새로 산 넥타이와 셔츠가 선생님께 예쁘게 보일까?

 

! 책이 출간되었더라면 선생님께 가장 의미 있는 선물이 될 텐데, 라는 아쉬움도 든다. 허나, 최고의 선물은 16년 전의 제자가 두 발로 뚜벅뚜벅 걸어가 인사를 드리며 손을 잡는 순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자꾸만 보다 나은 모습으로 보여 드리고 싶은 마음은 그저 제자된 자의 소원일 것이다. 스승의 마음은 제자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도 예쁘게 보이시리라. 그렇다면 선생님을 찾아뵙기 위해 망설일 필요가 무어 있단 말인가! 망설이지 말고 그저 시간을 내어 찾아뵙기만 하면 될 것이다.

 

오늘 내가 그 걸음을 하는 날이다. ! 이제 열차에서 내릴 시각이 되었다. 선생님을 뵐 시각이 다가왔다는 뜻이다. 나도 모르게 다시 한 번 하늘을 쳐다본다. 어느새 짙은 안개가 사라지고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이다. 마치 지금의 내 마음 같다.


                                  - 2008. 5
15日 오전 8:30, 동대구행 무궁화호 안에서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기경영지식인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 ceo@youni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