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글은 2010년 2월 28일 작성한 것입니다.
NO.1 이 아니어도 좋다!
어제의 자신을 뛰어넘었다면.
-보보의 벤쿠버 올림픽 간헐적 관람기
그야말로 전국민의 관심이었던
김연아 선수의 경기 장면을 제외하곤
이번 벤쿠버 동계올림픽을 자주 보지는 못했다.
언론에서 '중요한 경기'라고 소개하는 경기들은
금이냐, 은이냐를 가르는 결선 경기였다.
간혹 예선 경기중에 중요한 경기가 있긴 하지만,
그것은 유력한 금 후보가 또 다른 유력 금 후보를 만난 것이었다.
'중요함'의 기준은 다분히 '금'과의 접근성이었다.
사실, 그들의 금은동이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더 엄밀히 따지자면 올림픽도 내게 중요하지 않다.
내게 중요한 것은 나의 삶이다.
그리고 나를 둘러싼 사람들과의 관계다.
나는 나대로 살 것이니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나와 무관해,
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나의 생각은 오히려 그 반대다.
나는 작가를 꿈꾼다. "작가는 세상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는 수잔 손택의 견해에도 동의한다.
나 또한 세상 일에 무관심한 편은 아니니까.
사실, 내가 지금 말하려는 것은 '내 삶의 중요성' 여부가 아니라,
벤쿠버에 참가한 모든 선수들을 포함한 '개인들의 삶의 중요성'이다.
지난 2월 2일, 벤쿠버로 떠나기 전, 결단식을 가졌던 83명의 태극 전사들의 삶 말이다.
당시, 금메달 6개, 종합 10위를 목표했던 대한민국은 무난히 목표를 달성했다.
일본은 끝내 No Gold 로 대회를 마감했다.
한일전 경기마다 나 역시 민족주의로 다져지긴 하지만,
그들의 이번 대회 성적에는 짠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번 대회의 몇 장면을 지켜보며 한국인으로서 느끼는 행복감이 있었다.
그것은 일본의 빈약한 결과와 비교한 상대적인 만족이 아니다.
자기 신화를 이뤄낸 젊은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데서 오는 행복이다.
금메달만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나는 볼슬레이 팀의 선전에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영화 <국가대표>를 떠올리게 했다.
올림픽 첫 출전으로 60년 썰매 역사를 지닌 일본을 제치고
결선에 진출하여 최종 성적 19위로 마감했다. (일본은 21위)
이것 역시 일본을 이겼다는 것이 아니라, 선수들의 열정과 저력 때문이다.
[볼슬레이팀 관련기사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sec&oid=001&aid=0003145523&isYeonhapFlash=Y]
나는 곽민정의 선전에도 무한히 기뻤다.
어린 소녀는 올림픽 첫 도전에서 자신의 최고 기록을 넘어섰다.
대단한 선배 김연아처럼, 곽민정도 어제의 곽민정을 넘어선 영웅이었다.
점수를 받고 기뻐하는 곽민정의 행복한 표정을 보는 것은 내게도 행복이었다.
한국 선수만 지켜 본 것은 아니다.
TV를 자주 보지 못해 올림픽 경기 자체를 많이 보지 못했지만,
틈이 나면 누구의 경기든 관심으로 지켜 보았다.
지켜 본 사람 중에는 크세니아 마카로바라는 피겨 선수가 있었다.
쇼트 프로그램에서 55.38 의 시즌 베스트를 갖고 있던 크세니아 마카로바가
59.22 라는 높은 점수를 받으며, 1위를 차지했다. 그녀도 자신을 뛰어 넘은 사람이 되었다.
(아쉽게도(?) 그녀의 성적은 이후에 경기한 아사다 마오, 김연아 등에게 밀려났다.)
크세니아 마카로바는 좋은 체격 조건에다 화려한 기술의 조화로 참 아름다웠다.
우리의 김연아 선수가 이보다 더 잘한 단 말인가! 라는 생각에 감동적이었다.
(여러 사람들의 경기를 지켜보며 김연아 선수의 뛰어남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나는 자신을 뛰어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 모든 선수들을 응원했다.
혼신을 다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에는 그들과 함께 아쉬워했다.
혹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더라도 그들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자신을 뛰어넘기 위한 노력을(그것이 욕심일지라도) 시도하다
최악의 상황을 연출해 버린 이호석에게도 욕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이호석을 탓하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내가 어떤 논리 때문에 이호석 비방론에 대한 반감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잘 몰랐다.
그러던 차에 만난 동아대학교 정희준 교수의 글을 읽었는데
참으로 통쾌하고 명쾌했다. (꼭 한 번 읽어 보시길.)
내가 스포츠를 좋아하는 까닭은
스포츠 선수들이 모두 자신을 넘어서려는 치열함을 지닌 행동가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올림픽 선수단에 포함된 83명을 모두 존경한다.
언론은 보다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올림픽 소식을 보도해 주었으면 했다.
2월 27일 모 방송의 저녁 뉴스에서 벤쿠버 소식을 전했는데, 김연아에 대한 보도가 주였다.
그것은 결코 나쁘지 않다. 나는 주류에는 무조건 마음이 꼬이는 벤댕이가 아니다.
게다가 김연아에 대한 관심을 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적인 날이었으니.
다만, 다음 날에도 최고 이외의 소식을 전하는 데에는 무관심하다는 것이 아쉽다.
어제 저녁 뉴스에 불편했던 뉴스 중 하나는 김연아 선수의 부상 소식이었다.
올림픽 출전 전에 부상이 있었고,
김연아 선수의 금메달은 부상 투혼으로 얻은 값진 메달이라는 것.
뉴스는 긍정적인 사고의 힘이 메달의 공신이라는 표현으로 끝났다.
나는 생각했다. '부상을 안고 출전하는 것은 분명 부담이고
더 큰 정신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허나 그런 일은 매우 흔하다.
성공은 실패를 앞세우고 온다는 격언이 있을 정도로 말이다.
부상 투혼은 위대한 승리자들에게서 자주 발견된다.
승리는 실패와 도전를 넘어선 자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김연아 선수의 부상 투혼 뉴스는
봅슬레이의 선전 소식 등 다른 것으로 대체되어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또 하나의 불편한 방송은 SBS의 <연아의 트리플러브>라는 특집 방송이었다.
토요일 종일 강연을 마치고 편안한 마음으로 시청했지만, 방송을 끝까지 보기 힘들 정도였다.
(두 분의 아나운서 탓이겠냐만은) 아나운서 두 분은 김연아에 대해서도,
피켜 스케이팅에 대해서도 무지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수준 낮은 질문이 반복된 그 방송을 보신 분이 많을 것이기에 일일이 언급하진 않겠다.
(근거 없는 주장이 명예훼손이라도 될까 봐 관련기사 링크를 걸어둔다.)
[<연아의 트리플러브> 관련기사 : http://media.daum.net/entertain/view.html?cateid=100030&newsid=20100228103306934&p=starnews]
혹시라도 김연아라면 무조건 시청률이 높을 것이고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을 것이다'라는 생각이었다면 그야말로 저널리즘 정신을 상실한 태도다.
이번 벤쿠버 경기 중에 생방송으로 관람한 경기는 많지 않다.
이호석, 선수와 성시백 선수가 넘어졌던 바로 그 경기와
김연아 선수의 7분 경기가 전부다. 찾아서 본 경기는 김연아 선수 뿐이다.
쇼트와 프리, 두 개의 경기를 보기 위해 일부러 일정을 맞춰 집에 들러 홀로 즐겼다.
뉴욕타임즈도 "이번 올림픽은 김연아의 것이었다"고 흥분했다.
나는 그것이 호들갑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진정 그녀는 여왕다웠다.
"힘들었던 기억은 많고 기뻤던 순간은 잠시 뿐이었다.
올림픽 챔피언, 해치워 버려서 기분이 좋다"고 말한 김연아 선수의 말 속에서
그간의 힘겨움을 고스란히 느꼈다. 그녀의 메달이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
갑자기 김연아 선수 이야기를 한 것은
내가 김연아 선수 안티가 아님을 전하고 싶은 게다.
나 역시 짜릿한 감동으로 김연아 선수를 지켜 보았고, 뜨겁게 환호했다.
다만, 나는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은 것이고,
그런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에 일조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결론은 이것이다.
이제 벤쿠버 올림픽은 끝났다.
김연아에게 보냈던 정성스런 응원과 눈물 섞인 간절함보다
더한 정성과 간절함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 할 순간이다.
어제의 자신을 뛰어넘기 위해. 김연아처럼.
그리고
김연아에게 보냈던 응원만큼의 정성을 담아
82명의 태극전사들에게 전해 드린다. 잘 싸웠다고.
간절히 기원 드린다. 내일은 더 큰 선수가 되시라고.
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NO.1 이 아니어도 좋다!
어제의 자신을 뛰어넘었다면.
-보보의 벤쿠버 올림픽 간헐적 관람기
그야말로 전국민의 관심이었던
김연아 선수의 경기 장면을 제외하곤
이번 벤쿠버 동계올림픽을 자주 보지는 못했다.
언론에서 '중요한 경기'라고 소개하는 경기들은
금이냐, 은이냐를 가르는 결선 경기였다.
간혹 예선 경기중에 중요한 경기가 있긴 하지만,
그것은 유력한 금 후보가 또 다른 유력 금 후보를 만난 것이었다.
'중요함'의 기준은 다분히 '금'과의 접근성이었다.
사실, 그들의 금은동이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더 엄밀히 따지자면 올림픽도 내게 중요하지 않다.
내게 중요한 것은 나의 삶이다.
그리고 나를 둘러싼 사람들과의 관계다.
나는 나대로 살 것이니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나와 무관해,
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나의 생각은 오히려 그 반대다.
나는 작가를 꿈꾼다. "작가는 세상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는 수잔 손택의 견해에도 동의한다.
나 또한 세상 일에 무관심한 편은 아니니까.
사실, 내가 지금 말하려는 것은 '내 삶의 중요성' 여부가 아니라,
벤쿠버에 참가한 모든 선수들을 포함한 '개인들의 삶의 중요성'이다.
지난 2월 2일, 벤쿠버로 떠나기 전, 결단식을 가졌던 83명의 태극 전사들의 삶 말이다.
당시, 금메달 6개, 종합 10위를 목표했던 대한민국은 무난히 목표를 달성했다.
동메달 2개, 은메달 6개, 금메달 6개로
캐나다, 독일, 미국, 노르웨이에 이은 종합 5위!
캐나다, 독일, 미국, 노르웨이에 이은 종합 5위!
일본은 끝내 No Gold 로 대회를 마감했다.
한일전 경기마다 나 역시 민족주의로 다져지긴 하지만,
그들의 이번 대회 성적에는 짠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번 대회의 몇 장면을 지켜보며 한국인으로서 느끼는 행복감이 있었다.
그것은 일본의 빈약한 결과와 비교한 상대적인 만족이 아니다.
자기 신화를 이뤄낸 젊은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데서 오는 행복이다.
금메달만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나는 볼슬레이 팀의 선전에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영화 <국가대표>를 떠올리게 했다.
올림픽 첫 출전으로 60년 썰매 역사를 지닌 일본을 제치고
결선에 진출하여 최종 성적 19위로 마감했다. (일본은 21위)
이것 역시 일본을 이겼다는 것이 아니라, 선수들의 열정과 저력 때문이다.
[볼슬레이팀 관련기사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sec&oid=001&aid=0003145523&isYeonhapFlash=Y]
나는 곽민정의 선전에도 무한히 기뻤다.
어린 소녀는 올림픽 첫 도전에서 자신의 최고 기록을 넘어섰다.
대단한 선배 김연아처럼, 곽민정도 어제의 곽민정을 넘어선 영웅이었다.
점수를 받고 기뻐하는 곽민정의 행복한 표정을 보는 것은 내게도 행복이었다.
한국 선수만 지켜 본 것은 아니다.
TV를 자주 보지 못해 올림픽 경기 자체를 많이 보지 못했지만,
틈이 나면 누구의 경기든 관심으로 지켜 보았다.
지켜 본 사람 중에는 크세니아 마카로바라는 피겨 선수가 있었다.
쇼트 프로그램에서 55.38 의 시즌 베스트를 갖고 있던 크세니아 마카로바가
59.22 라는 높은 점수를 받으며, 1위를 차지했다. 그녀도 자신을 뛰어 넘은 사람이 되었다.
(아쉽게도(?) 그녀의 성적은 이후에 경기한 아사다 마오, 김연아 등에게 밀려났다.)
크세니아 마카로바는 좋은 체격 조건에다 화려한 기술의 조화로 참 아름다웠다.
우리의 김연아 선수가 이보다 더 잘한 단 말인가! 라는 생각에 감동적이었다.
(여러 사람들의 경기를 지켜보며 김연아 선수의 뛰어남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나는 자신을 뛰어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 모든 선수들을 응원했다.
혼신을 다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에는 그들과 함께 아쉬워했다.
혹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더라도 그들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자신을 뛰어넘기 위한 노력을(그것이 욕심일지라도) 시도하다
최악의 상황을 연출해 버린 이호석에게도 욕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이호석을 탓하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내가 어떤 논리 때문에 이호석 비방론에 대한 반감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잘 몰랐다.
그러던 차에 만난 동아대학교 정희준 교수의 글을 읽었는데
참으로 통쾌하고 명쾌했다. (꼭 한 번 읽어 보시길.)
어느 누리꾼은 관련 기사에서 "이호석 선수가 금메달 100개를 따와도 반갑지 않다"고 했단다.
"올림픽 경기 중이라도 이호석 선수와 그의 담당 코치를 징계해야 한다"고도 했단다.
한국에 이렇게 정신 나간 분들이 많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솔직히 이런 분이 둘만 되도 참 문제다.
이런 분에겐 이호석을 대신 해 한 마디 해드리고 싶다. "네가 타라. 스케이트."
"올림픽 경기 중이라도 이호석 선수와 그의 담당 코치를 징계해야 한다"고도 했단다.
한국에 이렇게 정신 나간 분들이 많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솔직히 이런 분이 둘만 되도 참 문제다.
이런 분에겐 이호석을 대신 해 한 마디 해드리고 싶다. "네가 타라. 스케이트."
- 정희준 교수님의 글 중에서
내가 스포츠를 좋아하는 까닭은
스포츠 선수들이 모두 자신을 넘어서려는 치열함을 지닌 행동가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올림픽 선수단에 포함된 83명을 모두 존경한다.
언론은 보다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올림픽 소식을 보도해 주었으면 했다.
2월 27일 모 방송의 저녁 뉴스에서 벤쿠버 소식을 전했는데, 김연아에 대한 보도가 주였다.
그것은 결코 나쁘지 않다. 나는 주류에는 무조건 마음이 꼬이는 벤댕이가 아니다.
게다가 김연아에 대한 관심을 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적인 날이었으니.
다만, 다음 날에도 최고 이외의 소식을 전하는 데에는 무관심하다는 것이 아쉽다.
어제 저녁 뉴스에 불편했던 뉴스 중 하나는 김연아 선수의 부상 소식이었다.
올림픽 출전 전에 부상이 있었고,
김연아 선수의 금메달은 부상 투혼으로 얻은 값진 메달이라는 것.
뉴스는 긍정적인 사고의 힘이 메달의 공신이라는 표현으로 끝났다.
나는 생각했다. '부상을 안고 출전하는 것은 분명 부담이고
더 큰 정신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허나 그런 일은 매우 흔하다.
성공은 실패를 앞세우고 온다는 격언이 있을 정도로 말이다.
부상 투혼은 위대한 승리자들에게서 자주 발견된다.
승리는 실패와 도전를 넘어선 자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김연아 선수의 부상 투혼 뉴스는
봅슬레이의 선전 소식 등 다른 것으로 대체되어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또 하나의 불편한 방송은 SBS의 <연아의 트리플러브>라는 특집 방송이었다.
토요일 종일 강연을 마치고 편안한 마음으로 시청했지만, 방송을 끝까지 보기 힘들 정도였다.
(두 분의 아나운서 탓이겠냐만은) 아나운서 두 분은 김연아에 대해서도,
피켜 스케이팅에 대해서도 무지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수준 낮은 질문이 반복된 그 방송을 보신 분이 많을 것이기에 일일이 언급하진 않겠다.
(근거 없는 주장이 명예훼손이라도 될까 봐 관련기사 링크를 걸어둔다.)
[<연아의 트리플러브> 관련기사 : http://media.daum.net/entertain/view.html?cateid=100030&newsid=20100228103306934&p=starnews]
혹시라도 김연아라면 무조건 시청률이 높을 것이고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을 것이다'라는 생각이었다면 그야말로 저널리즘 정신을 상실한 태도다.
이번 벤쿠버 경기 중에 생방송으로 관람한 경기는 많지 않다.
이호석, 선수와 성시백 선수가 넘어졌던 바로 그 경기와
김연아 선수의 7분 경기가 전부다. 찾아서 본 경기는 김연아 선수 뿐이다.
쇼트와 프리, 두 개의 경기를 보기 위해 일부러 일정을 맞춰 집에 들러 홀로 즐겼다.
뉴욕타임즈도 "이번 올림픽은 김연아의 것이었다"고 흥분했다.
나는 그것이 호들갑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진정 그녀는 여왕다웠다.
"힘들었던 기억은 많고 기뻤던 순간은 잠시 뿐이었다.
올림픽 챔피언, 해치워 버려서 기분이 좋다"고 말한 김연아 선수의 말 속에서
그간의 힘겨움을 고스란히 느꼈다. 그녀의 메달이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
갑자기 김연아 선수 이야기를 한 것은
내가 김연아 선수 안티가 아님을 전하고 싶은 게다.
나 역시 짜릿한 감동으로 김연아 선수를 지켜 보았고, 뜨겁게 환호했다.
다만, 나는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은 것이고,
그런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에 일조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결론은 이것이다.
어제의 자신을 넘어선 자는 모두 위대한 도전의 승리자들이다.
우리는 1등에게만 박수를 몰아 주기보다는
위대한 승리자들 모두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야 한다.
나 역시 'No. 1'보다는 'Only 1'을 꿈꾸는 사람이기에.
우리는 1등에게만 박수를 몰아 주기보다는
위대한 승리자들 모두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야 한다.
나 역시 'No. 1'보다는 'Only 1'을 꿈꾸는 사람이기에.
이제 벤쿠버 올림픽은 끝났다.
김연아에게 보냈던 정성스런 응원과 눈물 섞인 간절함보다
더한 정성과 간절함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 할 순간이다.
어제의 자신을 뛰어넘기 위해. 김연아처럼.
그리고
김연아에게 보냈던 응원만큼의 정성을 담아
82명의 태극전사들에게 전해 드린다. 잘 싸웠다고.
간절히 기원 드린다. 내일은 더 큰 선수가 되시라고.
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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