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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위로에 눈물을 흘리다

1.'누군가와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다. 이 책에 대해.' 『인간성 수업』이 안긴 생각이다. 올해 들어 두 번째다. 연초에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읽다가 감탄과 전율을 수십 번이나 느꼈다. 책을 읽다가 이런 생각도 했다. '공부 인연들과 함께 강독회를 하고 싶게 만드는 책이네. 아... 루크레티우스!' 『인간성 수업』은 루크레티우스 읽기에서 한 가지가 더 가미된 독서 여정이다. 감탄, 전율 뿐만 아니라 '울음'마저 안긴 것! (지적 희열은 나를 춤추게 하지만 지적 위로는 타자를 향한 깊은 공감 만큼이나 울컥하게 만든다. 마사 누스바움은 내게 지적 희열과 지적 위로를 모두 선사한다.) 나를 위로하고 지지하고 나아갈 길을 넌지시 보여주는 책을 만나다니! 독서가의 지복이다. 2. 책의 메시지..

남자보다 책이 나을 때

휴우. 지난 한 주를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한 숨이 나왔네요. 바빴습니다. 세 번의 수업을 진행했고 다섯 번의 강연을 청강했죠. 뒤풀이로 자정을 넘겨 귀가한 적도 두 번입니다. 한 번은 택시를 타야 할 상황인데 기어코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귀가하느라 피곤함을 더했네요. 편안한 시간들이긴 했지만 네 번의 만남까지 있었던 한 주였습니다. 오늘은 휴일입니다. 기다린 날이죠. 사실 오늘도 신청한 수업이 있는데 안 가려고요. 시시한 수업인데다 농도 심한 미세먼지가 제 결정을 지지하네요. 아침에 나가면 밤이 되어서야 돌아오는 일정도 두 번이었습니다. 갑자기 만남을 많이 잡은 건 아닙니다. 3월부터 청강하는 수업이 무려 일주일에 5개였죠. 여기에 약속 몇 개를 잡으면 강연 일정까지 더해져 벅찬 일정이 되더군요. 결..

이제야 하루가 완성되는구나

숙취 기운을 떨쳐내기 위해 벌꿀 두 스푼을 듬뿍 떠서 입에 넣었다. 500ml 생수도 삼분지 이를 마셨다. 짧은 후회가 스쳐갔다. '어제 많이 마셨어.' 오전 10시 3분 전. 교육장에 앉았다. 독서문화에 대한 '관심'에 얼마간의 '지식'과 '활동'을 부어주고 싶어 신청한 교육이다. '북도슨트 연지원'이라고 쓰인 명패를 보며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북도슨트 교육생 연지원이라고 써야 정확한 내 신분(?)인데...' 제작 측 입장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오후 1시 3분 전. 샌드위치를 해치웠다. 정말이지 이건 내 식사 스타일이 아니지만 시간을 벌어야 했다. 가방에 『인간성 수업』이 있었으니까! 책을 꺼내려던 찰나 그녀가 도착했다. 33분이나 일찍 도착한 게다. 혼자만의 시간이 줄어든 아쉬움은 반가운 이를..

세상에 미덕이 드문 이유

우리는 세상의 모든 미덕을 자기 수준에서 이해하고 체험합니다. '얄팍한 관계'만 맛본 이들도 우정을 알고 체험했다고 말하지만 '지상 최고의 친밀함'을 맛본 이들 역시 우정을 알고 체험했다고 말합니다. 표현은 같아도 실상은 다릅니다. 얄팍함이든 절친함이든 우정이라는 단어로 표현되었지만 둘은 서로 다른 관계라 할 만큼 상호 교감이나 신뢰의 정도에서 차이가 크니까요. 교양인과 초등학생이 같은 모국어를 사용하더라도 서로 다른 언어생활을 영위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우정, 정직, 용기, 감사… 이러한 미덕들을 처음 듣는 사람은 없죠. 자주 들었고 얼마간은 실현하면서 살았을 겁니다. 그래서 이 미덕들을 '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아는지, 어떤 수준으로 경험했는지는 캐묻지 않은 채로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기도..

세상의 모든 팻 걸들에게

"나는 세상의 모든 팻 걸(Fat Girl)들이 이 글을 읽었으면 좋겠다." 내가 한 말이 아니다. 지적이고 유쾌발랄한 페미니즘 책을 쓴 린디 웨스트의 말이다. 그녀는 강하다. "끔찍하게 뚱뚱하다"(한 영국 신문의 표현)는 말에도 그녀가 취한 반응은 '셀프 하이파이브'가 전부였다.(p.65) 이보다 훨씬 악랄한 댓글로 단련된 그녀에겐 이 정도는 분노나 절망할 사안이 아니다. 그녀는 '린디 웨스트'다. 거짓되고 저열한 문화와 투쟁하며 살아온 명랑한 전사! 평생 팻 걸(Fat Gril)로 살아온 그녀는 자신의 결혼식이 중요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린디 웨스트는 용감하고 아름다운 결정을 했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으로 결혼식을 올린 것이다(그녀는 어릴 때부터 수치에도 없는 머리 크리를..

와우 수업을 마치고

1.오랫동안 내 삶의 중심이었던 와우 수업을 일단락했다. 2003년 3월에 시작하여(2월이던가?) 2018년 3월 17일에 11기 마지막 수업을 했으니 꼭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렇게 두 문장을 써 두고서 말문을 잃어 한참을 멍하게 앉아 있었다.) 당분간은 지난날들을 되돌아 보고 묻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와우에 대해, 깊이 교감했던 인연들에 관해 그리고 우리가 배운 것들에 대해. 2.마지막 수업은 하루 온종일 진행됐다. 꼬박 24시간이 넘는 시간이었다. 근사한 공간에서 자유롭게 둘러 앉아 수업을 진행했다. 1년 동안 배우고 느낀 것들과 변화된 삶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를 향한 마음도 내어 놓았다. 편안하고 따뜻했다. "수업은 마지막이지만 우리는 계속 만날 테니까요." 자주..

전문가 사람 그리고 하늘

마음과 엉덩이로 바라고 바랐던아직은 되지 못해 여전히 동경하는그래서 오늘의 나를 추동하는 오랜 꿈여기저기 자처하나 알고 보면 아닌 때로는 숨소리 들릴 듯이 가까이 가끔은 마음이 그리워하도록 멀리손으로든 마음으로든 연결되어야 벗동물이지만 동물같은 삶은 아니어야 행복한 자들은 미소로 마주하고지친 이들은 물끄러미 올려다보는만인의 거울이자 나만의 창문그리운 이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밤거리에서 부른 노래

연일 수업의 연속입니다. 이 달의 평일 저녁 일정은 일찌감치 꽉 채워졌죠. 한 달 중 쉬는 날은 3월 7일 하루뿐이네요. 월요일과 화요일엔 제가 진행하는 인문정신 수업이 있습니다. 다른 요일은 청강하러 갑니다. 3월 한 달 동안 그리스 문명, 프란츠 카프카, 소설의 캐릭터에 대해 배웁니다. 이런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저녁마다 바쁜 요즘입니다. 하나의 수업은 산만하고 두 개의 수업은 재밌습니다. 하나가 아쉽다 보니 배움의 자리를 신중하게 선택해야 함을 느꼈네요. 재밌는 수업이야 두말할 필요가 없는 삶의 활력입니다. 이걸 공부해야겠구나, 얼른 저걸 읽어야지 이러는 동안 의욕이 생겨나는 거죠. 제가 다름 아닌 지.성.을 찾아갔음을 감안하면 활력은 보너스요 뜻밖의 습득물입니다. "아테네의 황금기를 이해하려면 ..

내 생애 마지막 글은

햇살이 지하철에 동승했다. 동작역을 지나 한강을 마주한 순간 빛이 열차 안으로 쏟아졌다. 오후 햇살의 나른함과 편안함 그리고 따뜻함이 차 안을 그윽하게 만들었다. 기분 좋은 봄볕이었다. 차창에 붙어 햇살을 바라보았다. 핸드폰 카메라도, 나도, 자신만의 시선으로 석양을 감상했다. 보고 또 봐도 감동과 전율을 안기는 일몰이라는 마법! 오후에 읽었던 이라는 짧은 글이 떠올랐다. 올리버 색스는 자기 생의 마지막에 쓴 이 글에서 ‘안식일의 평안’을 예찬했다. 글은 이렇게 끝난다. "이제 쇠약해지고 호흡이 가빠지고 한때 단단했던 근육이 암에 녹아 버린 지금, 나는 갈수록 초자연적인 것이나 영적인 것이 아니라 훌륭하고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로 생각이 쏠린다. 자신의 내면에서 평화를 느낀다는 게 무엇인가..

두 번의 인문학 수업 단상

어제는 두 번의 인문학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둘 다 인상 깊은 시간을 보냈네요. 잠시 음미하고 싶을정도로 말이죠. 오전에는 소크라테스 특강이었는데 소수의 인원이었습니다. 지인이 당신의 독서모임에 저를 초대(?)한 거죠. 특강 부탁이라는 말이 더 맞겠네요. 강연료가 아주 적다고 어렵게 부탁하셨지만 저는 흔쾌히 응했습니다. 제 수업에 여러 번 참석했던 그의 진정 어린 태도가 제 마음을 움직였다고 하는 게 맞겠군요. 소크라테스는 제가 좋아하는 주제입니다. 강연도 여러번 진행한 터라 그의 시대, 소크라테스라는 인물, 그의 현재성 등 이야기할 컨텐츠도 다양했죠. 문제는 난이도입니다. 어느 정도까지의 디테일, 정교함, 깊이를 다뤄야 하는지가 고민인 거죠. (사실 일반 강연회에서는 늘 이것이 어려움입니다. 어떤 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