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시의 한 연수원에서 진행된 워크숍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는 길, 전화가 두 통 왔다. 발신인 이름이 뜨지 않는, 모르는 번호였다. 받지 않았다. 어쩌면, 아는 사람의 번호일지도 모른다. 아이폰을 구입하면서 예전의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던 전화번호를 옮기지 않았으니까. 가족과 소수의 친구 그리고 와우 연구원들의 번호만 옮겼다. 그리고 변화경영연구소 동문회장이 된 후, 연구원들의 전화번호를 저장했을 뿐이다.
집에 도착하니,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소식 들었어?" 불길하다. "B 어머니께서 오늘 소천하셨대." 내일 장례식장에 가기로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의 10년을 어머니께 드리고 싶다"던 내 친구 B의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 (http://www.yesmydream.net/1414) 모르는 사람의 전화는 아마도 비보를 전하려던 중요한 전화였던 것 같다. 소식을 전해 준 친구에게 고맙다. 그의 번호가 저장되어 있었다는 사실도 고마웠다.
1. 병원 가는 사람들
장례식장은 연세 세브란스 병원이었다. 신촌역 1번 출구 계단을 올랐다. 지상으로 오르기도 전에 나는 줄을 서야 했다. 셔틀버스를 타려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많을 줄이야! 병원 홈페이지에서 확인한 바로는, 셔틀버스는 5분 만에 한 대씩 온다. 난 생각했다. '그렇게 병원 가는 사람들이 많나?' 많았다. 그리고 셔틀버스는 정말 5분 만에 왔다. 사실, 내가 탄 버스가 출발하기 전에 다음 버스가 와 있었다.
35명 정도 되는 승객 중 누군가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나 보다. 운전 기사분에게 묻는다. "늘 이렇게 사람이 많아요?" 기사분은 친절했다. 여러 가지 설명을 해 준다. 많지요. 아프신 분들, 면회가는 분들, 협력업체 관계자 분들, 뭐 다양한 사람들이 타니까요. 내가 빠졌다. 나처럼 차분한 마음으로 조문가는 사람들도 있다. 셔틀은 몇 대예요? 승객이 다시 물었다. 6대요, 경북궁역으로 가는 셔틀도 있습니다. (연세 세브란스로 가는 셔틀은 신촌역, 경북궁역 두 군데서 출발한다.)
병원 본관 앞에 도착했다. 건물 안에도, 건물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수많은 사람들은 내게, 그 누구도 생로병사의 인생사를 피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태어났고 늙어가고 있지만(노화는 25세 이후로 시작된다), 병으로 고생하고 있지 않으니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병동에 있는 이들은 창 밖의 걸어다니는 사람들을 얼마나 부러워할까? 우리는 몸이 쇠약할 때, 비로소 평범한 것들 속에서 아름다움을 본다.
걸어다니는 사람들 중에 병동 속의 사람들처럼 길 가의 꽃을 신비롭게 바라보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그 순간, 겨울의 찬 바람이 매우 신선한 공기처럼 다가왔다. 하지만, 나는 장례식장으로 걸어가고 있다. 오늘은 객이지만, 언젠가는 나도 저 공간의 주인이 되어 누군가를 맞이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모두는 누구나,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어떤 이는 6개월짜리 시한부 인생, 다른 이는 30년 짜리 시한부 인생.
2. (주체에게는) 가장 외로운 길
인간이라면 종종 (혹은 자주) 외로움을 느낄 수 밖에 없겠지만, 사람들과의 친밀한 관계는 우리의 외로움을 다독여 준다. 하지만, 그 누구도 달랠 수 없는 게 있다. 죽음 말이다. 죽음은 그야말로 외로운 길이다. 홀로 가야 하는 길이다. 마지막 인사로 배웅할 수는 있을지라도 그리고 신의 환대를 받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죽음으로 가는 그 길은 아무도 동행할 수 없다.
고대 그리스의 철인 에피쿠로스는, 죽음은 경험 바깥에 있는 것이므로 삶에 있어서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죽음은 가장 두려운 악이지만, 살아있는 우리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다. 왜나하면 우리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 우리와 함께 있지 않으며, 죽음이 오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죽음은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 모두와 아무 상관이 없다."
우리는 분명 죽음을 앞둔 존재이지만,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에피쿠로스의 교훈이다. 에피쿠로스는 감각적 쾌락을 강조한 점 때문에 많은 오해를 받았지만, 그것은 정말 오해였다. 그는 삶의 향유를 권장한 것이지, 물질과 정신의 균형이나 절제를 불필요하다고 말한 것은 아니었다. 정작 에피쿠로스의 삶은 모범적이라 할 만큼 자제심이 있었다고 한다.(한스 요하임 슈퇴리히)
에피쿠로스의 주장은 위로를 준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느라 삶의 향유를 누리지 못하는 것을 경계했다. 이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현명한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 일시적인 동요에 빠지긴 하지만 결국엔 마음의 평정을 찾는다. 6개월 뒤에 죽는다는 사실이 오늘의 삶을 방해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제어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친구의 어머니도 그러했고, 2011년 연말에 1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은 강영우 선생도 그러시다.
사람들은 죽음을 더디게 맞이하려고 안간 힘을 쓴다.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으려는 노력의 일환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 사람들 말이다. 지금 여기의 삶을 향유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일이다. 한편,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나머지 고통을 멈추기 하기 위해서다. 그런 선택까지 하도록 만든 절망스러운 상황이 한스럽고 슬프다. 에피쿠로스는, 현자들이 죽음을 대하는 방식을 소개한다. 우리들과 정반대다.
"사람들은 죽음을 가장 큰 악이라고 생각해서 두려워하다가도, 죽음이 인생의 악을 중지시켜 준다고 생각해서 죽음을 열망하기도 한다. 반면, 현자는 삶을 도피하려고 하지도 않고 삶의 중단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삶이 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삶의 부재를 악으로 생각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음식을 먹는 경우처럼, 현자는 단순히 긴 삶이 아니라 가장 즐거운 삶을 향유하려고 노력한다."
3. (타자에게는) 가장 슬픈 일
17호실 입구에는 친구 어머니의 영정 사진이 걸려 있었다. 차분하지만 환하신 표정이다. 생전에 뵈었던 그 모습, 하지만 생애 마지막 2년에는 볼 수 없었던 모습. (어머님은 2년 전에 뇌줄중으로 쓰러지셨다.) 처음으로 B의 집에 놀러가셨을 때에는 어머님께서 반겨 주셨고, 신앙 생활 열심히 하라고 덕담도 해 주셨다. 그 때의 어머님 모습이 떠올라 덜컥 눈물이 나려 했다. 나는 잠시 복도에 있는 의자에 앉아 진정해야 했다.
나는 슬펐다. 지하철 신촌역에 내렸을 때, 영정 사진을 뵐 때, 마지막 인사를 올릴 때, 친구로부터 마지막 가시는 모습을 들을 때 슬펐다. "임종하셨던 모습을 좀 들려줘." 이미 여러 번 고비를 맞으셨기에 가족들은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한 상태였다. (갑작스러운 사별에 비하면 이것은 축복이다. 당황스럽지 않아서가 아니라, 고인과 작별 인사를 했다는 점에서.) 친구가 들려준 말은 이러했다.
토요일에 병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위독하시다고. 다음 주를 넘기시기 힘들 것 같다고. 토요일 밤 가족이 모였다. 그 날과 일요일은 잘 넘기셨다. 월요일에 집에 씻으러 왔는데, 오후 3시 쯤 다시 연락이 왔다. 오늘 넘기기 힘드실 것 같다고. 가족이 모였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나는 마지막 인사를 나누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했다. 하지만, 친구는 어머니께서 우리의 말을 다 들으셨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오후 5시 30분에 영원히 잠드셨다.
"어머니가 대학원 시험을 기다려 주신 것 같아. 토요일 시험을 치자마자 병원으로부터 연락이 왔으니까. 어머니께서 만약 토요일 이전에 돌아가셨으면 시험 못 치고 휴학했을지도 몰라." 어머니는 가시는 길에서마저 아들의 안녕을 돌보셨다. 조문 오셨던 한 분은 이 말에, 당신의 아버지도 모든 자녀를 만나고 난 후에 돌아가셨다고 거들었다.
내 친구네는 신앙인들이고, 마음의 준비를 해 온 터라 죽음을 초연히 맞이했지만, 일상을 살다 문득 어머니의 부재를 느낄 때가 있을 것이다. 가족과의 사별은 슬프다. 사별 당시에는 눈물을 흘리거나 슬픔을 느끼지 않던 사람이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야 그 때의 멍했던 감정이 슬픔이었음을 알고 뒤늦게 통곡하기도 한다. 자, 나는 이 즈음에서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주장했던 에피쿠로스의 말에 부분적인 반대 의견을 내놓고 싶다.
죽음에 관한 에피쿠로스의 모든 주장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것은 죽음을 맞이한 당사자의 입장만 반영한 것일지도 모른다. 죽음을 지켜보아야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죽음은 충격이고 슬픔이고 때로는 상처다. 많은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들의 죽음이란, 잠시 시간 내어 현금을 넣은 봉투를 들고 조문을 다녀오는 일에 불과하다고 할지라도, 죽음은 충격과 슬픔이다. 가족과 소중한 사람들에게는 분명히 그렇다.
어머니께서 쓰러지시고 난 이후, 두 번을 찾아 뵈었다. 죽음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기에는, 어머니께서 쓰러지시기 전의 집안 분위기와 너무 많이 달라졌다. 반겨주셨던 어머니는 안면이 마비되어 표정이 없으셨고, 휠체어에 앉아 거동도 전혀 못하셨다. 어머니의 손길이 닿았어야 할 집안은 약간 어수선했다. 가족들이 오직 어머니의 건강을 돌보느라 그럴 수 밖에 없었으리라.
죽음은 외로운 길이지만, 에피쿠로스의 지혜를 쫓아 아무 것도 아닌 일로 만들 여지는 있다. 죽음의 주체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은 '친밀한' 타자에게는 가장 슬프고 충격적인 일이다. 또한 삶의 이런 저런 변화를 불러오는 사건이다. 오늘 밤, 다시 조문하러 가서 2년 동안 부모님께 효심을 다한 친구에게 수고했다고 전하려 한다. 그리고 침묵으로 위로하고 싶다.
글: 자기경영전문가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 컨설턴트 ceo@youni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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