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의 슬픔은 변덕이 심하다. 여러 가지 감정으로 변모하여 나를 휩쓸고 지나간다. 어떤 날엔 슬프더니, 다른 날엔 고통스럽다. 또 다른 날엔 억울하거나 두렵다. 오늘의 주된 정서는 ‘한(恨)’이었다. “억울하고 원통한 일이 풀리지 못하고 응어리져 맺힌 마음”이 한(恨)이다.
스스로를 달랜다. “무엇이 그리 원통하니?”
#. 친구의 소중함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친구가 진료차 서울에 올 때마다 무조건 만난다는 생각은 잘 지켰지만, 녀석이 대구에서 지낼 때엔 많이 못 갔다. 우울하다고 했을 때, 심심하다고 했을 때 자주 만났어야 했는데...
어제 평택에 있는 친구를 만나러 운전하다가 이렇게 울부짖었다. “상욱아, 미안하다. 미안하다. 상욱아, 미안. 그 때 내가 내려갔으면 함께 시간도 보내고 이야기도 나누었을 텐데... 네가 그나마 건강했을 그때 좀 더 자주 만났어야 했는데... 상욱아, 미안.”
대구에 왜 자주 못 갔나? 시간을 내기도 쉽지는 않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전혀 아니었다. 왕복 다녀오는 비용 10만원이 아깝기도 했다. 그때 내가 비용을 따졌다는 사실이 징그럽다. 친구는 나보다는 넉넉한 형편이다. 돈보다 시간이 소중했을 그에게, 내가 어찌 그런 생각을 했었단 말인가.
#. 친구와 작별 인사를 나누지 못한 것도 원통하다. 6월 내내 이런저런 이야기를 적잖게 나누었지만, 정작 마지막 인사를 할 기회는 갖지 못했다. 여러 번 대구에 내려갔지만, 번번이 친구가 의식이 없을 때만 찾아갔었다. 나는 친구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녀석에게 고마움을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내가 자기를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를 알면, 생의 끝자락에 서서 조금이라도 위안을 얻었을 것 같아서다. ‘아! 내가 이런 친구였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조금이라도 편안히 눈을 감았을 것 같아서다.
#. 대구에 내려가면 항상 나를 찾는 친구였다. 대구에 가더라도 가족 외에는 연락을 안 할 때가 있는데, 녀석에게는 연락을 하는 편이었다. 동대구역으로 나를 마중 나오기도 하고, 서울로 떠나는 나를 배웅하기도 했다. 내가 녀석을 좋아하는 것보다 녀석이 나를 더 좋아한다고 생각했었는데, 2014년 7월 6일부로 바뀌었다. 이젠 나 홀로 녀석을 그리워하게 됐다. 보기 싶어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날마다 나를 힘들게 한다. 녀석이 떠나기 전, “상욱아, 너가 많이 보고 싶을꺼야. 정말 많이.”라고 말하지 못한 게, 참 원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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