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멍하게 TV를 시청하고서

카잔 2015. 1. 18. 11:38

어젯밤 열두시가 넘어서야 서울에 도착했다. 2박 3일 동안 많이 돌아다녔다. 공주에서 강연이, 진주에서 4기 와우의 결혼식이 있었다. 목요일에는 모기업 연수원에서, 금요일에는 대전 대림호텔에서 잤다. (베니키아 호텔인데도 가격이 워낙 저렴해서 예약했는데 후지긴 했다.) 여행은 좋지만, 장시간 운전은 고달프다. 그래서 하행길에서 대전에서 숙박했었다. 오는 길에도 중간에서 하루 더 숙박할까 고민했지만 숙박비도 아끼고 업무도 밀려서 서울행을 택했다. 상행길은 진주 - 양평 집 - 서울 작업실로 이어지는 먼 거리였다. 도착하여 잠시 누워서 '씻어야 하는데... 씻어야 하는데...'를 반복하여 중얼거리다가 눈을 뜨니 아침이었다.

 

휴일이어서인지, 며칠 떠돌이 생활을 해서인지 평소 하지 않던 일을 했다. TV를 틀었고, 3시간 30분 동안이나 시청했다. 중간에 식사도 했고 정리정돈을 하는 동안에도 내내 TV가 켜져 있었다. <TV쇼 진품명품>, <썰전>에서 서장훈이 출연한 대목, 그리고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를 잠깐 봤다. 이럴 거였으면 조조 영화나 보고 올 걸, 하는 생각도 스쳤다. 아래는 TV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들.

 

출연자는 노비 문서가 아닐까 말했지만, 감정결과 노비 문서가 아니었다.

 

* <진품명품>에 등장하는 사연자(?)들은 최소한 3가지 공통점을 보였다. 1) 진품인지 명품인지 아니면 시시한 물건인지 모른 채로 장기간 보관했다는 점. 그들은 "어떤 가치가 있는지 알아보려고 왔어요" , "진품이면 앞으로 잘 보관해야지요" 식으로 말한다. 2) 제대로 알아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점. 그들은 "이것이 무엇인지 이름이나 용도 등을 알려고요" , "화가의 이름은 아는데 어떤 분인지 몰라서요" 식으로 말한다.

 

3) 대체로 예상 판정가를 매우 겸손하게(?) 제시한다는 점. 김구 선생의 글씨를 들고 온 이는 500만원이라고 적힌 보드판을 들고서 이렇게 말했다. "사실 천만원이라고 적고 싶었지만 겸손하게(?) 적었어요. 500만원이면 만족해요." (나는 그녀가 진심을 말한 것인지 헷갈렸다.)

 

나는 사연자들을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 전통을 대하는 전형적인 모습을 보았다고 생각할 뿐이다. 명절마다 제사를 지내며 나는 회의한다. 사람들은 정말 조상 신이 온다고 믿는 걸까(아니라면 왜 계속하는 걸까), 회의하면서도 한 번도 제사의 효용과 민속 신앙에 대해 탐구한 적이 없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매년 제사에 참여한다. (절을 하지는 않지만, 가족의 일원으로서 지켜본다.) 믿지도 않는 전통에 나는 올해도 겸손하게(?) 참여할 것이다.

 

제사는 그나마 낫다. 부수적 효과가 있으니까. (맏며느리는 고생을 많이 하지만 덕분에) 가족끼리 만나 음식을 즐기고, 조상에게 절하며 마음을 다잡기도 할 테니까. 문제는 따로 있다. 누구나 살아온 생활방식을 별다른 생각없이 고수한다. 최초의 생활 방식 역시 신중하게 선택한 것도 아닐 것이다. 5년, 10년 이상 살아온 방식도 전통이라 할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지금 논하는 문제의식에 맞닿아 있는 결정적 문제다. 생활 방식이 곧 우리의 삶을 결정짓는다는 점에서, 이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다.

 

- 자주 지각하고 종종 약속을 놓치는 것은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 늘 본업보다는 다른 일에 관심을 빼앗기는 습관은 어떤 영향을 미칠까?

- 자신에게 진실하지 못하고 자주 합리화를 일삼는 태도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 규칙적인 운동과 건강한 식생활의 라이프스타일은 어떤 결과를 부를까?

- 항상 남의 말을 경청하고 모든 것으로부터 겸손히 배운다면 삶은 어떻게 될까?

- 어떠한 라이프스타일이 내가 원하는 삶에 가까워지게 만들까?

 

과실을 원한다면 씨를 뿌리고 물과 거름을 주어야 한다. 살아가는 방식이 씨앗이리라. <TV쇼 진품명품>은 그나마 반전이 있다. 창고에 넣어 두었던 그림이 2천만원의 고가로 판정받는다. 라이프스타일에도 그런 반전이 있을까. 영어책을 창고에 처박아 두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어떤 학원으로부터 "당신은 놀라운 영어 실력을 가졌군요"라고 말하는 날은, 결단코 없을 것이다. <진품명품>을 보는 재미는 가치의 반전 그리고 물건의 제값찾기에서 얻게되는 지적 기쁨이다. 삶의 재미는 어디에 있을까? 반전이 없으니... 씨뿌리고 땀흘리며 노력한 결과로 얻은 결실에 삶의 기쁨이 있지 않을까.

 

* <썰전>에 등장한 서장훈은 까칠한 모습 그대로였다. 출연진이 말할 때마다 "그게 아니라" "그건 아니구요" 하면서, 그네들의 말을 교정했다. 이윤석은 10년도 더 된 일로 서장훈이 사과했다는 말도 했다. 예전에 이윤석의 인터뷰 요청이 서장훈이 본의 아니게 거절했던 적이 있다는 것. 서장훈의 까칠함은 오히려 섬세함 또는 정교함일 것이다. 감수성이 뛰어난 이들은 정확하게 이해받고 싶어한다. 당연한 결과로 그들은 오해받는 것을 싫어한다. 작은 오해도 그들의 섬세한 감수성에 걸려들고 만다. 까칠함은 그 결과일 뿐.

 

* 또 다른 생각 하나 : '허지웅은 굉장히 자주 등장하는구나. 영화 <국제시장>에 대한 그의 발언은 지나치게 한 쪽의 관점만 취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는데, 그를 잘 모르니 판단은 유보하자. 시간이 나면 그의 에세이를 한 번 읽어보고 싶은데... 시간이 되려나. 고종석 선생이 허지웅의 글을 칭찬한 이유가 궁금하긴 하다. 취향을 강하게 드러내는 것도 어떤 때에는 지성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 그것은 지성과는 무관하다. 허지웅은 어떤 평론가일까.' 궁금했다.

 

* 베트남의 국민 영웅이 잘못 알려진 사진 한 장으로 인생을 망쳐버린 이야기가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 방영됐다. 토니 모리슨이 2007년 전미도서상에 선정되지 못하자 그녀는 심사위원에게 이렇게 따졌다. "내 인생을 망쳐줘서 고맙군요." 데이비드 실즈가 그의 책에 소개한 일화다. 실즈는 넌지시 비꼬았다. "내 인생이 고작 몇 사람이 점심을 먹으면서 선정하는 상을 받느냐 마느냐에 달려 있다면, 내 인생에는 뭔가 문제가 있다." 실즈의 전언이 사실이라면, 내가 봐도 토니 모리슨가 실수했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를 보면서 든 생각 : '칭찬을 못 받는다고 인생이 망쳐지는 것은 아니지만, 엄청난 비난은 인생을 망칠 수 있다. 칭찬은 없지만, 큰 비난도 없는 지금의 내 인생은 감사하고 평온하 기뻐할 여지가 충분하다. 크고 작은 어려움은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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