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집에서 푸욱 쉬었다. 2월 1일부터 헤르페스 각막염이 찾아와 간간이 나를 괴롭혔기에 녀석을 잠재우고 싶었다. (괴로움은 크지 않다. 눈이 뻑뻑하고 눈물을 흘리는 정도다.) 2015년을 시작하며 헤르페스에 대해 목표를 세워 둔 것이 있다. 분기별로 1회씩, 딱 네 번만 아프자는 것이었다. 아직까지는 목표를 지켜가고 있다. 1월에 3번 아팠고, 2월에 한 번 아팠으니 남은 11개월 동안 한 번도 아프지 않으면 된다. 하하. (사실 1월에 발병 주기를 보며 좀 놀랐다. 역시 측정하고 나면 보다 합리적인 계획을 세우게 된다. 수정된 계획은 월 1회가 목표다.)
2.
하루 동안 한 일이라고는 독서와 식사 그리고 낮잠 밖에 없다. 뒹굴 거리며 책을 읽었고, 조금만 졸리면 내 몸을 졸음에 맡겼다. 저녁이 되니, 조금 아쉬움이 든다. 마사지라도 받으며 보다 효과적으로 쉴 걸(바닥에서 자서인지 목이 아주 살짝 뻐근해서 하는 말이다), 금요일 저녁인데 친구랑 약속이라도 할 걸(하루 종일 빈둥거리는 바람에 밤까지 내일 오전 강연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두 가지 아쉬움을 달래며, 일곱 시가 되기 전에 외출했다. 착즙 주스와 건강빵 그리고 커피 한 잔의 여유 앞으로 나를 보내 주었다. 스퀴즈빌리지(착즙주스 전문점)에 들렀다가 내가 좋아하는 카페에 앉은 것. 나는 느낀다, 진한 행복을. 커피향보다 짙은.
3.
오늘의 독서는 뒹굴거리며 읽기에는 꽤나 머리 아픈 책이었다. 오전 내내 알랭 바디우의 『철학을 위한 선언』(이하 『선언』)을 읽었다. (바디우 철학의 입문으로 제격인 책이다. 제이슨 바커의 『바디우 철학 입문』이라는 책도 훌륭하나, 복잡하고 어렵기는 매한가지다. 말이 '입문'이지, 실은 '고문' 같은 책이다. 그 책을 읽었지만, 끝까지 읽지는 못했다.) 바디우에 관한 해설 텍스트를 얼마간 읽어둔 덕분인지, 속도가 느려서 그렇지 80% 정도는 이해하며 읽었다. 『선언』은 바디우 책 중에서 『사랑예찬』 등 소수를 제외하면 가장 쉬운 책에 속하는 책이란다.
바디우 철학을 개괄적으로 조망하는 책이니, 큰 그림을 그리는 식으로 읽으면서도 중요한 개념은 명확히 이해하려고 애썼다. GLA START 4주차 수업 내용도 하나 건진 것은 수확이었다. 두어 시간씩 3일 정도를 더 투자하면 『선언』을 끝까지 읽을 것 같다. 200페이지가 안 되는 얄은 책이니, 이런 점이 좋네. 다음 책은 『조건들』이다. 두툼한 책이지만, 요즘 독서 탄력이 붙었으니 진득하게 읽어볼 생각이다. 요즘 니체의 『이 사람을 보라』(이하『이 사람』)를 다시 읽는 중이다. 오후에는 이 책을 펼쳤다. 바디우에 비하면 읽기 쉬우나, 니체의 직관과 비유가 깃든 문장들은 명확하게 잡히지 않았다. 성향이 다른 두 철학자의 책을 연달아 읽었더니, 개념적이고 논리적인 사유가 아닌 아포리즘과 비유로 책을 쓰는 니체가 확연히 드러났다.
4.
길거리 장면 #1. "명진이 머리 했네?" 두 걸음 앞서 걷는 친구에게 40대 부인이 물었다. 명진이는 뒤로 돌며, 어때? 괜찮아? 하고 말을 받았다. 나는 그들 곁을 걸어서 지나가고 있었다. 명진 아줌마의 파마 컬이 그다지 세련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사실 살짝 감탄했다. 하지만 이내 의아했다. 내 눈썰미가 좋아진 건가 싶다가 확신하지는 못해서.) 명진 아줌마의 친구들은 진실을 말했을까. (내가 보기엔 정말 컬이 별로였다.) 이내 나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생각의 결론 : 영적 우정이 필요하다. 아래는 생각의 과정이다.
'펌을 하면 친구들이 알아본다, 모든 친구가 아니라 외모의 변화가 눈에 들어오는 친구들만 그럴 것이다. 내가 성장하면 친구들이 알아보겠지. 모든 친구가 아니라 내면의 변화를 눈치 채는 친구들만. (그런 친구들을 떠올려 보았다.) 나는 과정을 즐기는 사람이다. 성장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없다. 그저 아름다운 가치를, 나를 매혹시키는 가치를 즐기면서 추구하고 싶을 뿐이다. (이를테면, 용기, 학습, 자유, 배려, 친절, 리더십을.) 추구의 결실이 무의미하지는 않으리라 기대 정도는 한다. 나 개인의 행복 정도를 꿈꾸기 위해 공부하고 노력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생각들을 나누고, 변화의 모습들을 서로 격려하는 친구의 존재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5.
길거리 장면 #2. 식당 창문을 통해 친구들끼리 만나 식탁에 둘러앉은 젊음들의 모습을, 나는 보았다. 검은색 패딩 점퍼를 입은 남자가 볼에 든 야채를 개인 접시에 덜어놓더니, 고기를 불판 위에 올렸다. 친구 상욱이가 떠올랐다. 빠릿한 몸짓으로 고기를 굽던 그였다. (맞은편에 앉은 남자는 나를 등지고 있었기에, 표정도 무얼 하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녀석이 죽어서 떠오른 건 아니다. 살아 있을 때에도, 우리는 자주 생각했다. 생각이 날 때면, 전화를 걸곤 했다. (녀석이 내게 전화를 건 적이 훨씬 많았지만, 나도 한때 자주 전화를 했다.) 지금, 내게 전화 한 통 걸어주면 참 고마울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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