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제는 여유를 만끽했다. 2월을 바쁘게 보냈고 3월에도 강연이 많으니 커피 한잔의 여유가 절실할 때 찾아온 행복한 하루였다. 아침에 마음편지를 보내고 나서는 느긋하게 독서했다. 스퀴즈빌리지 홍대점에서 착즙주스를 사와 간식으로 먹으면서 독서와 업무를 즐겼다. 오후에는 낮잠을 잤던가. 기억이 가물하다. 아마도 이런저런 일들을 하느라 낮잠 타이밍을 놓쳤던 것 같다. 저녁에는 홀로 티박스라는 카페에서 보이차를 즐기며 책을 읽었다.
2.
모처럼만의 독서는 맛난 음식처럼 나를 즐겁게 해 주었다. 『교양과 무질서』와 『이것이 문화비평이다』를 제법 읽었다. 매슈 아널드의 비평관이 정교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여, 내 나름으로 보완하여 글로 적기도 했다. 이택광 선생이 말하는 문화비평은 문화 속에 숨은 정치적 구조 해석이 본질이었다. 모든 문화가 정치에 영향을 받는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회의 이전의 호기심이었다.
3.
3월 강연을 헤아려보니 16회다. 서양문학사 강연을 비롯한 여러 강연 자료를 만드는 것이 3월의 주요 업무다. 오늘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메일함과 USB를 뒤졌다. 작년 가을, 하드디스크 데이터 유실이라는 대란 속에서
혹시 살아남은 파일이 없는지 찾기 위해서였다. 헛수고였다. 아쉽고 속상하지만, 유인물들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출력해 둔 유인물이 있다는 것! 굳게 다짐했다. '결국엔 넘어서야 할 감정이라면, 휘둘리지 말자.'
4.
저녁 시간을 보낸 카페 티박스는 매혹적인 곳이었다. 보이차 세트로 주문했더니 직원이 와서 근사하게 차를 내려주었다. 찻잎를 우려낸 첫 물을 비워내는 모습과 모든 다기를 따뜻하게 유지하기 위해 뜨거운 물로 적시는 과정을, 나도 모르게 경건하게 지켜보았다. 차 한 잔에도 정성을 다하면 마음이 새로워짐을 느꼈다. 새로운 마음이 차를 음미하게 만들었다. 책의 한 장 한 장을 정성들여 읽게 된 것은, 삶의 모든 순간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우주적 원리의 귀결이었으리라.
5.
어제의 마지막 일과는 영화 관람이었다. 몇 주 전부터 보고 싶었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예매해 둔 것. 밤 11시 30분 시작이라 잠시 고민했지만, 하루 2회 상영일 뿐이었고, 예매하려고 할 때의 선택지가 이것 뿐이었다. 잠자리에 들 무렵에 영화를 보러 나가는 내 모습이 생경했다. 영화는 나를 포함하여 여섯 명이 관람했다. 12시가 넘어가니 잠시 졸리긴 했지만 잠들지는 않았다. 영화는 재밌었고, 생각꺼리도 많았다. 늦은 밤의 영화관람은, 여유로운 날에 시도해 볼 수 있는 괜찮은 일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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