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친구야, 내 마지막 부탁이다

카잔 2014. 7. 5. 15:32

오전에 사무실 정리를 하고, 시간절약을 위해 짜파게티를 끓여먹고서 오후 2시 열차를 탔다. (짜파게티는 두어 달에 한 번씩 먹는 별미다.) 열차에서 오늘 친구에게 전할 말을 생각했다. 어제 의식이 돌아왔고, 오늘 면회를 온 이들도 알아본단다. 작은 기적이 일어난 셈. (이미 5일 전, 병원 측에서는 이제 의식이 못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고 했었다.)

 

무슨 말을 하나?

 

가장 행복했던 추억과 사랑한다는 말은 이미 아산병원에서 했다. 대구의료원에 와서는 고맙다는 말도 했다. (그때 친구는 “내가 더 고맙지”라고 했었다.) 녀석에게 미안한 일이 있었나? 생각하고 옛일들을 떠올려도, 없다. 친구로 지내는 동안 녀석에게 잘못한 일이 없고, 병을 앓은 동안에는 정성을 기울였다.

 

최근 2년 동안, 친구는 자신의 불찰이 빚어낸 불행으로 인해 괴로워했다. 늘 잘 들어주다가 딱 한 번 조언을 건넨 적이 있는데, 그때 서운했을 것이다. 그게 마음에 걸린다. 허나, 친구로서의 내 마음을 이해해 주었을 것이다. 특별히 하고 싶은 말들을 이미 해 두었던 터라, 오늘은 고마움을 되새기는 걸로 생각을 모았다. 아래는 기차에서 쓴 글이다.

 

#. 참 고마웠던 일. 이게 중요하겠다! 고등학교 때, 나를 공부시키겠다고 똑같은 연습장을 사서 빡빡이를 채우고,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나를 찾아 다녀 준 것이 고맙다. (나는 종종 잠을 자기 위해 녀석을 피해 다른 반으로 숨었다.) 니 결혼식 사회는 꼭 내가 봐야 한다고 당부했던 것이, 지금 와서 보니 참 고맙다. 아픈 데도 여전히 나를 배려해 주어 고맙다. 그리고... 네가 준 마지막 선물... 잊지 않으마.

 

#. 보성스파월드에 갈 때마다 참 행복해하는 너였다. (서로의 불알이 드러나는 순간을 그토록 자주 가졌으니, ‘불알친구’는 우리를 두고 하는 말이겠다.) 친구야, 네가 베니건스에서 근무할 때, 나는 퇴근시각에 맞춰 자주 너를 찾아갔지. 그때 베니건스 매장 사이를 뛰쳐나오는 모습은 영원히 잊지 못할 거다. 그날 너는, 내가 너에게 어떤 친구인지를 보여주었다. 옥계 여행, 비진도 여행은 우리 젊은 날의 행복이었지? 대학생 때, 둘이서 재즈바를 다녔던 일도 기억하지?

 

#. 친구야, 열세 살에 만나 서른 일곱이 되기까지의 세월이 이십 오년이다. 고등학교 3년, 대학교 5년 동안은 일년 중 안 만난 날이 십 수일이지 않겠냐? 따져 봐라. 나는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이다. 엄마와는 13년을 함께 살았는데 다섯 살 이전의 기억은 거의 없고, 다른 여자 친구와 함께 보낸 시간은 너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 그러면서도 싸운 적이 없으니, 우리도 알지 못하는 둘이 어울릴 수 밖에 없는 무언가가 있겠지? 그게 뭐겠냐?

 

#. 친구야. 내 말을 듣고 있으면 대답해 줄래? 나, 너와 이야기를 나누려고 가고 있다. 오늘로 네가 임종실에 온지도 벌써 5일째다. 임종실로 옮겨왔던 날, 내가 계속 네 곁에 있던 걸 알고는 있냐? 그때, 너와 열두 시간을 함께 있었지만, 너는 일초도 깨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너무나 궁금하다. 그때 내가 했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말이다. 제발, 오늘은 고개라도 끄덕여 이야기를 좀 나누자. 친구야. 내 마지막 부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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