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인이 선릉역 출구에서 서 있는 나를 앞서 나갔다.
옆 모습만 보았는데도 그녀를 알아 본 것은 목소리 때문이었다.
전화 통화를 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기억났던 것이다.
영어를 유창하게 사용했던 프라하에서 만난 배낭 여행객이었다.
한국인 7~8명이서 함께 우르르 체코의 맥주를 즐겼던 기억도 함께 떠올랐다.
그녀는 상록회관 근처로 엄마를 만나러 가는 중이랜다.
순간 상록회관 지하에 있는 상록마트에 가서 장이나 볼까, 하다가 관두었다.
세련된 옷차림의 커리어우먼과 청바지 차림의 장보러 가는 남자는 어울리지 않은 듯했기에.
어쨌든 같은 방향을 걸으면서 5분 정도의 대화를 나눴다.
반가움에 어색하진 않았다. 다만, 동네 마실 차림의 내 상태가 부끄러웠을 뿐.
"강의를 하신다고 했죠?" 그가 물었다. 기억해 주어 고마웠다.
"제가 이번에 프리랜서들을 인터뷰하며 책을 하나 쓰려고 하는데
주변에 혹시 성공한 프리랜서 아는 사람 없나요?"
그녀는 준비 중인 책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고,
오늘도 프리랜서 한 명을 인터뷰하고 오는 길이라 했다.
"아! 제가 바로 성공한 프리랜서지요." 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좀 더 친했으면 던졌을 법한 농담인데, 이 타이밍에서는 썰렁한 분위기를 만들어낼테니까.
"성공이라 하면, 어느 정도의 수준이어야 하나요?"
정말 궁금하여 물어본 것이다. 그녀의 대답은...
회사 나와서 홀로 자기 영역을 잘 개척해 나가는 사람 정도였던 것으로로 기억된다.
우린 서로 메일로 연락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그녀는 상록회관으로, 나는 카페데베르로.
아니다. 도중에 빠리바게뜨에 들러 소보루빵을 하나 샀구나.
소보루빵 두 개를 양쪽 주머니에 찔러 넣고 걸으며 생각했다.
우리는 똑같은 주제의 책을 쓰고 있구나.
(나도 1인 기업가에 대한 책을 구상하고 있으니.)
같은 주제의 책을 쓴다고 해서 그녀가 경쟁 상대가 되는 건 아니다.
우린 각자 열심히 자신의 길을 가고 있을 뿐이다.
예전 같으면 경쟁 도서를 내게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안다. 두 사람이 같은 주제로 책을 쓰더라도 전혀 다른 류의 책이 된다는 것을.
물론 책이 덜 팔릴 순 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시장은 하나니까.
그저 독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유익한 책을 쓰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일이다.
이럴 땐, 경쟁 의식이라도 좀 생겼으면 좋겠다. (천하태평인 나다.)
그나저나, 성공한 프리랜서라... 누굴 소개해야 하나?
메일 써야겠다. "저는 어때요?"
하하.
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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