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8시간이 얼마나 긴긴 시간인지 알려면
예비군 훈련에 참석해 보면 된다.
나는 어제와 오늘, 각각 8시간과 4시간 훈련을 받았다.
훈련이 시작된 후, 예비군 대원들은
시가지전투 훈련장으로 이동했다.
교관의 설명을 한참동안 듣고
1분대의 시가지 전투 훈련이 시작될 무렵
손목시계를 들춰 보았다. 아이고야.
최소한 40~50분이 지났기를 바랐는데
이제 겨우 13분이 지났다니.
절망도 잠시, 추워서 제자리에서 뜀뛰기를 했다.
그렇게 반 시간은 추위에 떤 것 같은데
다시 시계를 보니 12분이 더 지났다.
으악!
지금까지 보낸 시간이 겨우 25분이라니.
이런 식으로 8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 이것이 예비군 훈련이다.
그래도 난, 어제 8시간 교육을 무사히 (조퇴의 유혹을 뿌리치고) 수료했다.
저녁에 해야 할 일을 정리하거나 미래를 공상하면서 버텼다.
#2.
사람의 복장이 그 옷을 입은 사람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고 싶다면
예비군 대원들을 지켜보면 된다.
무엇이 예비군 대원들을 그토록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존재로 만드는지는 모른다.
분명한 것은 예비군 대원들은
교관과 조교에 매우 비협조적이라는 사실이고
군복을 벗으면 그들의 태도가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오늘 나는 어떤 예비군과 함께 퇴소했는데, 그는 친절하고 부드러웠다.
내일 자신의 자동차로 pick-up 까지 해 준댄다. 고마운 분이다.)
또 하나 놀라운 것은 훈련을 마치고 돌아가는 그들의 차종이다.
어제 퇴소할 때 내 눈앞을 연이어 지나가는 3대의 차량은
아우디, 렉서스, 뉴 그렌져였다. (역시 강남구다.)
우와!
이렇게 번듯한 차를 타고 다니는 청년들도
놀랍도록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존재로 바뀌는 것, 이것이 예비군 훈련이다.
나는 BMW를 타고 집으로 왔다.
Bus, Metro 그리고 Walking.
(정말 그래야 집으로 올 수 있다. 택시는 비싸니까.)
*
날씨는 추웠고, 비는 추적추적 내렸지요.
예비군 대원들은 무지 떨었습니다. 저도 그랬구요.
정신교육에서는 이런 말이 강조되었지요.
경제가 무너지면 적은 것을 잃고
정치가 무너지면 많은 것을 잃지만
안보가 무너지면 모든 것을 잃는다.
개인에게도 이 말이 적용될까요?
그렇다면 저는 이런 식의 표현이 어떨까, 하고 생각합니다.
경제적 손실은 적은 것을 잃는 것이고
관계의 손상은 많은 것을 잃는 것이다.
정신의 타락은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예비군 훈련은 대한민국의 남자들이
피해갈 수 없는 일입니다.
이것은 인생에서 매우 작은 부분이겠지만
또한 인생은 이런 작은 부분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것일진데,
도무지 어떻게 그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군요.
혹자는 제가 너무 복잡하게 생각한다고 핀잔을 주시겠지요.
허나, 핀잔이 두려워 생각을 멈출 수는 없지요.
저는 의미를 추구하는 사람이고,
때로는 추구 그 자체가 삶의 의미가 되기도 하니까요.
답을 얻지 못한다 할지라도 생각의 과정 자체가 도움되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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